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제서 (문단 편집) == 편찬 과정 == 오균이 제사(齊史)를 편찬할 것을 황제에 올렸으나 거부당하고 소자현이 편찬을 스스로 맡았으니 『남제서』는 형식상은 사찬이나 관찬이나 마찬가지이다. 심약(沈約)과 [[위수]](魏收)가 각각 『[[송서]]』, 『[[위서#s-2]]』를 스스로 편찬한 경우를 보듯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사관의 역할에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자가 많았다. 따라서 [[당나라]] 때 형성되었다고 보는 설관수사(設官修史)가 이미 남북조시대 때 만들어졌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소도성은 등극한 후 1년 뒤 480년에 사관을 두기 시작했다. 남제에 대한 사서로는 단초와 강엄이 편수한 『제사(齊史)』가 13권이 있었는데 이로서 이미 10지가 만들어졌다. 양나라 때 편찬된 소자현의 『남제서』와 더불어 심약의 『제기(齊紀)』 20권, 오균의 『제춘추(齊春秋)』 등은 모두 『제사』를 참조하였다.[* 그 외에도 진나라 때 유척의 『제기(齊紀)』 10권, 왕일의 제전추 5권, 웅양의 『제전(齊典)』 10권 등이 편찬되었는데 지금은 모두 산일되어 현존하지 않고 오로지 『남제서』만 남아있다.] 소자현은 제나라의 건국자인 소도성의 손자로서, 특이하게 전 왕조의 자손이 그 왕조의 역사를 스스로 편찬한 유일한 예로 남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