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인 (문단 편집) ==== [[예송논쟁]] ==== 제대로 된 충돌이 터져나온 것은 [[효종(조선)|효종]]이 갑자기 죽고 [[현종(조선)|현종]]이 즉위하자 터진 [[예송논쟁]]이었다. 효종보다 어린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이 발생한 것인데([[기해예송]]), 초기에는 효종이 차남이란 이유로 기년복으로 잠정 합의가 되었으나 남인 출신의 [[윤휴]]가 효종은 [[소현세자]]를 대신한 적장자로서 효종을 위해서 마땅히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송이 커졌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상복 입는 기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졸곡이 끝나는 기간이라는 다소 두루뭉술한 기준을 적용시켰던 터라, 효종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1년 정도 입고 말자는 분위기여서 윤휴의 주장은 묻히는 듯 했다.[* 하루를 달로 쳐서 1달만에 끝내는 조선 초의 역월법에 비하면 1년도 충분히 긴 것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남인의 거두 [[허목]]이 3년복을 입는 것이 마땅하다며 상소를 올리면서 기존의 기년복을 정면으로 비판했으며, [[송준길]]의 반박에도 허목의 논리로 원두표 등이 허목 지지로 선회하는 등 분위기가 3년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송시열]]이 "체이부정" 논리로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윤선도]]가 강경한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논쟁은 다시 재격화가 되었다. 서인 산당이 장악한 [[삼사(조선)|삼사]]는 윤선도가 송시열을 역적으로 몰았다며 반좌의 율을 적용하여 윤선도를 사실상 죽일 것을 청했으나, 송시열 파의 강경 드라이브에 회의를 느낀 일부 산당과 한당 세력에서도 윤선도를 지지하는 상소가 나오는 등 조정이 시끄러워졌다. 결국 현종이 예송 금지를 명하고 기년복으로 상복을 결정지으면서 기해예송은 일단 마무리지어졌다. 기해예송은 [[이이(조선)|이이]]의 이기일원론[* 이와 기가 같은데서 나옴 ≒ 왕도 사대부에 포함됨. 요즘식으로 치면 공화파로 해석할 수 있는 태도이며, 서인의 당론이다.]과 이황의 이기이원론[* 이와 기가 유별함 ≒ 왕은 특별하며 사대부와 구분됨. 북인과 남인이 취한 태도로,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이학파에 비해 근왕파적인 면모가 있다고 볼 수 있다.]간의 논쟁이기도 했다. 15년 뒤 2차 예송인 갑인 예송이 효종 비인 [[인선왕후]]가 죽으면서 벌어졌다. 이번에도 자의 대비는 살아있어서 오례의에 따라 기년복으로 정해진 상복이었는데, 산당이 [[예조]]에서 효종을 위해 기년복을 입었으니 그 비를 위해서는 마땅히 대공복(9개월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을 고쳐 올리자 왕은 노하여 예조 당상들을 모조리 파직하고 이어서 기년복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영상 김수흥 등이 반발했으나 왕은 반대하는 신료들을 파직하고 3일 만에 기년복으로 상복을 정했다. 남인들이 신속하게 개입했으면 서인들을 역으로 몰아 처벌하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현종이 너무도 빨리 예송을 마무리지으면서 그럴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현종이 불과 2달 후 급사하고 세자 [[숙종(조선)|숙종]]이 즉위하면서 새로운 판국에 접어들었다. 불과 14살인 숙종은 부왕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송시열을 비롯하여 서인들을 대거 귀양보내거나 조정에서 몰아내고 남인에게 정권을 준 것이다. 게다가 남인이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인 내 비주류였던 한당세력의 도움도 한 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50년에 가까운 서인 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남인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다만 서인 정권이 종지부를 찍을 것은 징조가 보이던 일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경신대기근]]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송시열과 윤증-윤선거 부자의 대립과 산당-한당 대립으로 서인이 분열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정권교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신대기근이 일어나면서 정치적 혼란이 가속화 되기 시작했고, 서인 정권은 이에 사치를 자제하는 것 등의 자구책을 내놓기도 하고, 척신세력과 함께 상대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이 상당히 가중되면서, 서인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된 듯 보인다. 그러나 당장 정권이 남인으로 교체되지는 않았고 서인이 3년 동안은 더 집권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