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원정 (문단 편집) == 역사 == 1999년, [[한나라당]]의 당내 혁신 차원에서 이회창 총재의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로 들어온 이들[* [[친박]]으로 분류되었던 [[유승민]] 또한 이러한 의도로 들어온 것이다.]로, 그 전엔 [[남경필]]은 [[이회창]] 후보의 대변인, [[원희룡]]은 [[변호사]], [[정병국]]은 [[문민정부]] 청와대 제2부속실장 출신이였다. [[1998년 재보궐선거]]로 먼저 정치에 들어온 [[남경필]]과 달리 다른 둘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로 들어왔는데, [[남경필]]도 사실상 이때부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남원정의 출발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로 대부분 여겨진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에 성공한 세 사람은, [[김부겸]], [[권영진]][* 단, [[권영진]]은 나중에 합류했다.]과 함께 젊은 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개혁적이고 소신있는 언행들로 유명해졌는데,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줄여서 미래연대의 주축 멤버로서 미래연대가 생기고 부터 보수 일색을 넘어 수꼴이라는 비아냥까지 듣던 한나라당 내부에 이 때부터 젊은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는 당의 강령에 따라 찬성했다. 이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병국]], [[남경필]]이 강하게 [[이명박]]을 지지하던 것과 달리 [[원희룡]]은 경선에 출마하였지만 3등으로 낙선한다.[* 4등은 [[홍준표]]였다.] 사실상 이 당시부터 3명은 각자도생을 걷게 된다.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된 [[원희룡]]은 서울 시장 경선에서 [[나경원]], [[오세훈]]에게 밀리며 낙선하고 총선 불출마를 건 당 대표 선거에서 '''4등으로''' 떨어지며 최고위원이 되지만 이듬해 중앙 선거권을 떠나게 된다. 반면 대표적인 [[친이]] 정치인이 된 [[정병국]][* 사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 가장 많았던 [[상도동계]]에서는 서청원(대표적인 친박), [[김무성]](후에 범친이성향 비박으로 이탈), [[강삼재]](이회창 지지)나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탈한 [[김영춘]], [[박재호]] 등의 일부를 빼고는 거의가 [[이명박]]을 지지했으며, [[상도동계]]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김덕룡은 아예 [[이재오]], [[이상득]], [[최시중]], [[박희태]]와 친이 핵심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상도동계]]인 [[정병국]]이 [[친이]]라는 건 딱히 이상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이 2010년 초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며 제18대 국회 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에 선출된다, 2011년 1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역임하였고, 재임 중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프랑스]]와의 협상을 통해 국보급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를 환수받았고 [[한국문화원]]을 설치하거나 [[K-POP]] 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양심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한다. 강하게 [[이명박]]을 지지했던 [[정병국]]과 달리 [[남경필]]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파동때, 경찰의 폭력진압 논란에 대해서 비판하고 미국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협상할 것을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명박]]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이명박 정부]]가 잘 되려면 형까지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 곤란하다면서 이상득에게 국회의원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용보다는 '정치와 이념' 잣대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정두언]], [[정태근]]과 함께 사찰대상이 되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사실상 친이계를 떠난다.[* 이 때, [[이상득]]은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에게 '참 나쁜 사람들'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했고, [[남경필]]은 이에 반발해 사찰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후 [[홍준표]] 신임 당 대표와 함께 최고위원에 선출되어 [[유승민]], [[정병국]], [[원희룡]]을 그 곳에서 만난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와 선관위의 디도스 공격 논란이 일자 [[유승민]]과 함께 지도부 사퇴를 주장해 홍준표 체제가 무너지고 박근혜 대표 체제로 전환되어 비대위에 들어간다. 이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남경필]]은 [[경기도지사]]에, [[원희룡]]은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각각 당선된다. 또한 [[정병국]]은 계속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이 시기까지는 광역자치단체장 중에서도 서울시장과 함께 투톱인 경기도지사가 된 남경필이 남원정 중 정치인으로서 가장 앞서나갔다고 볼 수 있다. 남경필과 원희룡은 이 선거를 계기로 50대 초반의 젊은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대권주자로 분류되게 된다. 하지만 남경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아들의 군대 내 폭행 사건과 마약 투여 사건으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2016년 들어서 남원정은 배신의 정치라 불리며 찍힌 [[유승민]], [[이혜훈]], [[유의동]], 새롭게 개혁적 성향을 보이던 [[김성태]], [[장제원]], [[지상욱]], [[하태경]]과 함께 쇄신파라 불리게 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개혁파, 소장파들과 [[새누리당]]을 탈당, [[바른정당]]을 창당한다. 남경필의 경우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서 [[유승민]]과 붙었으나, 큰 득표율 차로 낙선하고 만다. 하지만 바른정당이 지지율 부진을 겪고 [[바른정당 탈당사태]]가 반복되며 결국 [[남경필]]은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 경기도지사 재선[*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을 노렸고, 원희룡의 경우 바른정당의 후신인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한다.[* 결과는 당선되었다.] 반대로 정병국은 바른정당에 남으며 바른미래당에도 잔류함으로서 남원정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하면서 재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