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수단 (문단 편집) === 현대 === 독립 직후 15년간 1차 내전으로 100만 명이 사망했다. 결국 [[1978년]] 남북 분단에 일시적으로 합의했지만 남수단에서 석유 등 지하자원들이 대규모로 발견된 것이 문제였다. 1983년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궐기하면서 2차 내전이 일어났고, 20년간 내전이 지속되었다. 2003년에는 수단 서부에 위치한 다르푸르에서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반군을 지지하는 민간인들을 공격해 30만 명의 희생자와 2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는 [[다르푸르 학살]]이 발생했다. 수단 내전 당시의 참상을 찍은 사진들 중 유명한 사진이 있다. 1993년 2월 남수단 아요드 지방에서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찍은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을 받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35&oid=028&aid=0000223135|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독수리]]라는 사진이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소녀를 [[독수리]]가 지켜보는 장면으로, 내전 당시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포착한 동시에, 사진 기자로서의 윤리에 대한 논란으로 숱하게 인용한 문제의 사진이다. 다만 워낙 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한 통에 여러가지 루머가 섞여있다. 2차 내전으로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수단이 공격을 일단 중지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투표가 이뤄졌다. 당시 [[수단 공화국|수단]] 대통령이었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2004년 유엔 평화 유지군 주둔 이후 [[다르푸르 학살]] 때의 인종청소 및 전범 혐의로 국제형사법원의 체포 영장을 받았다. 남수단 독립 투표는 2011년 1월 9일 일주일간 진행되었고, 투표 3일만에 60%의 투표율을 돌파하였다. 개표 결과 찬성 표가 무려 98.83%에 달해 7월 9일 정식으로 수단에서 분리 독립하였다. 국제 사회의 승인 과정에 대해서는 [[남수단/독립]] 문서 참고. [[파일:4A223B74-589B-4595-8B39-692C223EEFDE_cx0_cy6_cw0_w1023_r1_s.jpg|width=750px]] 2016년 마차르의 [[부통령]] 취임식 때의 사진. 왼쪽부터 부통령이자 반군 지도자 리에크 마차르, [[대통령]] 살바 키르이다. [[2011년]] [[7월 9일]]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했고, 초대 대통령은 그동안 수단 부통령으로 있던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Salva Kiir Mayardit). [[가톨릭]]계이자 1983년 수단인민해방군을 세운 존 가랑이 2005년 의문의 헬리콥터 사고로 죽자 2인자인 뒤를 이은 사람이다. 남수단은 [[국제연합|UN(국제연합)]] 기준으로는 193번째 독립국가이자 유엔 회원국이다(2011년 7월 14일 가입). [[수단 공화국|수단]]이 독립 직후 남수단을 국가로 인정하고 남수단의 독립 선포식에 [[수단 공화국|수단]]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독립을 축하하는 등으로 문제는 일단락은 되었다. [[수단 공화국|수단]]에서 독립한 이후에 잘 될 줄 알았으나, 남수단 초대 대통령인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가 헌법을 개정하여 자신의 권력을 엄청나게 강화하여 독재를 시작하는 막장 짓을 저질렀다. 결국 제2차 수단 내전 당시에 수단과 무장 투쟁을 했던 다른 반군과 민주화를 추구하는 반군들이 부통령인 마차르를 중심으로 모여 치열한 내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악명 높은 내전인 남수단 내전이다. 그렇게 대통령 세력과 부통령 세력으로 나눠진 반군들의 극심한 내전은 2013년부터 시작되어, 남수단 국민들 수만 명이 숨지고 최소 22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하며, 2014년 [[소말리아]]를 제치고 '세계 최악의 [[파탄국가]]'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돠었다. 이후 유엔과 서구 열강의 중재하에 2015년 8월 평화 협정을 맺었으며, 2016년 4월 반군 지도자였던 마차르가 부통령을 맡는 연립 정부를 구성해 정국이 안정되는 듯 했으나 2016년 7월에 대통령과 부통령의 경호원들이 무력 충돌을 하며 또 다시 [[남수단 내전|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생기고 있다. 그 와중에 조지 클루니가 세운 센트리에서 남수단 높으신 분들이 내전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4&oid=003&aid=0007468293&mode=LSD|#]] 2017년 5월 기준 남수단은 4년째 이어진 내전으로 어린이 난민이 200만 명을 넘어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9250709|#]] 2019년 4월에도 앙숙인 살바 키르 대통령과 부통령 출신의 반군 지도자 리크 마차르가 연립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2020년 2월 22일에 남수단 정부와 반정부 세력이 참여하는 과도 통일 정부가 출범되면서 사실상 [[남수단 내전|내전]]이 종식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3&aid=0009716594|#]] 부통령에는 반군 지도자가 취임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421899|#]] 5월 20일에 남수단에서 무를레족과 누에르족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23424|#]] 2020년 8월 12일에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장 해제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127명이 사망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811089|#]] 8월 31일. 반군 세력과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50539?sid=104|#]] 2021년 3월 2일에 남수단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10명이 사망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421&aid=0005200693|#]] 2023년 1월 6일, 공식 행사장에서 대통령이 바지에 소변을 본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남수단 언론인 6명이 구금당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550392?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