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전쟁 (문단 편집) === 정치적 의의 ===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남북 합쳐서 당시 미국 인구 약 3000만 명 중에 60만 명 이상이 죽었으며 이는 2차 세계대전 사망자수의 약 2배이다.] 자국민이 목숨을 잃은 전쟁[* 전쟁을 제외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다.]이었으나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민주국가로서의 대외적인 '간판'을 세울 수 있었고, 이전과 달리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적 통합을 이루게 됨으로써 이후 미국이 [[제국주의]] 열강 국가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명목이었던 '노예제 폐지'가 이루어졌으며[* 뒤늦게 남부에서도 전쟁 말기에는 '독립을 위해서라면 [[영국]]과 [[프랑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예 해방도 가능하다'란 주장을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전세를 뒤집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흑인의 지위가 마침내 백인과 동등해지고 공직에 진출하는 등 장밋빛 전망이 펼쳐졌으나, 흑인 지위 상승과 함께 남부의 '옛 반란군'을 박살내려던 전쟁장관 스탠턴, 하원의원 [[새디어스 스티븐스]], 상원 의원 [[찰스 섬너]] 등의 [[공화당 급진파]][* 다만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인해 이들 급진파들의 관점에 힘이 크게 실렸고 한동안은 남부지역의 통치가 이들의 뜻대로 영향을 받는다. 밑에 후술하듯이 10년이 넘는 군정과 남부인들의 권리제한 등.]가 몰락하고 공화당이 보수화되면서 1876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을 덮기 위해 민주당과 타협한 끝에 결국 '''흑인의 지위가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남북전쟁은 남부주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전쟁으로 인해서 늘어난 연방정부의 지출, 전쟁을 통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 그리고 그에 따른 금융시장의 팽창으로 북부는 엄청난 경제적 황금기를 맞게 된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J. P. 모건]]이 죄다 이 시기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치적 타협과는 별도로 전후 [[미국 민주당]]은 내전을 일으킨 원흉으로 지목받아 미국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 공화당의 독주 체제가 공고화되어 전후에 치뤄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매번 낙선하였다. [[1872년]] 대선에서는 아예 민주당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공화당에서 [[분당(정치)|분당]]한 자유공화당(남부에 대한 '''탄압'''이 주 레퍼토리)의 호레이스 그릴리를 지지하는 촌극까지 벌인다. 공화당이 장기집권한 약 70년의 기간 동안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우드로 윌슨]] 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클리블랜드의 경우에는 연임이 아니라 당선된 후 한 번 낙선한 뒤 재당선되었으며, 우드로 윌슨은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진보당을 따로 창당해서 출마하여 공화당의 표를 갉아먹어 어부지리로 당선된 경우이다. 게다가 '''남부 지역 전체가''' 군부의 지배를 받는 등[* 연방 공직 임명시 남부인은 무조건 배제에 충성 서약을 하지 않을 시 참정권 등의 시민권 행사 불가는 덤.] 그 처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독립 이후 특정 지역이 군부의 지배를 받은 것은 이때가 유일하며, 이 조치는 편법을 써서 대통령이 된 [[러더퍼드 헤이스]] 대통령의 공약으로 해제된다. 이조차 헤이스 대통령이 득표는 지고 선거인은 이기는 뭔가 찜찜한 대통령이 된지라, 남부의 지지라도 받을 필요가 있었기에 이뤄진 조치였다. 실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 중에는 오키나와의 중심지 '[[슈리 성]]'에서 대공식별용 성조기가 없자 해병들 중 한 명이 휴대하고 다니던 남부기를 게양해 당시 미군 지휘부가 황당해한 에피소드[* 사단장이 새 국기를 보내줘서 이틀만에 성조기로 교체했다.]가 있으며, 심지어 6.25 때도 남부기를 달고 다니는 미군 전차부대를 본 한국군 포병대가 '하고 발포를 망설이다가 미군 [[군사 고문단]] 장교가 말려서 아군인 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베트남전]] 때는 남부 출신 백인 미군들이 남부기를 달고 다니다가 흑인 및 북부출신 미군들과 패싸움이 터지는 일도 잦았다. 미국 남부주 흑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이 남부 주청사에 게양된 남부기의 영구폐기를 강력히 주장해 성공한 일도 있지만 이에 반해 계속 게양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는 세력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2015년 딜런 루프에 의한 총격 사건으로 남부기는 잠재 테러집단인 백인 우월주의 인종주의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상태. 아마존, 이베이, 월마트 등의 기업들은 남부기가 찍힌 상품을 취급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미국의 국기 제조 회사들도 더 이상 남부기는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 깃발을 두고 찬반 논란이 팽팽했던 구도인데, 퍼거슨 사태, 에릭 가너 폭행 치사 사건, 딜런 루프의 테러 사건 등으로 근 몇년 사이 인종 문제가 미국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다시 재부상하면서 혐오, 증오 상징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커지고 있다. 현재도 미국은 연방 탈퇴에 관한 성문화된 법이나 성문 헌법의 조항이 없는데, 남북전쟁은 어떤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할 시 연방정부가 전면전을 불사하고 무력으로 진압/토벌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연방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선례로 남았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연방 탈퇴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의 옆나라인 [[캐나다]]가 [[퀘벡]] 주와 [[앨버타]] 주, [[서스캐처원]] 주 등지에서 연방 탈퇴와 분리독립에 대한 주장이 한때 나왔거나 나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 심지어 캐나다는 자국 헌법에 연방 탈퇴에 관해서 주와 준주 지역의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주민투표 시행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조항까지 있다. 실제로 퀘벡 주가 이를 이용해 1980년과 1995년에 두 번이나 연방 탈퇴, 분리독립을 시도하려 한 바 있었다.] 실제로 초기에 연방정부와 마찰이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주축이었던 유타주가 얌전히 협상을 통해 연방에 합류한 것도 남북전쟁의 영향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