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명 (문단 편집) == 당시 주변국들의 반응 == 조선에서도 이 남명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송시열은 상소를 올렸을 때 '중국 남녘 외진 곳에 한 줄기 정통이...(중략)'이라는 구절을 넣었고, 남명 최후의 황제인 영력제의 연호를 쓰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력제가 죽자 자체적으로 기려서 이를 알게 된 청나라와 외교분쟁까지 갈 뻔했다. 다만 송시열이 상소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데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건가요?' 하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조선에서는 최소한 청나라가 대놓고 눈치 챌 정도로 남명을 지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차피 거리가 너무 멀어 지원해 주고 싶어도 못했을 것이다. 송시열의 상소에는 전체적으로 남명에 우호적이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어쩌구 하는 내용이 있지만, 송시열의 행보를 살펴보면 '북벌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자신과 자신의 세력에 정당성을 가져다 줄 수 있으니' 지지한 듯하다. 영력제 사후 조선의 양반들이 영력제를 기렸음을 청나라에서 눈치를 챘던 걸 보면, 아무래도 조선은 남명의 존재를 알았지만 적대하지도 우호하지도 않은 듯하다. 대신 반청인사들이 [[숭정]] 연호를 알음알음 계속 사용했다. 다급한 남명정권은 외국에도 구원을 청한 바 있는데 일본에 지원병을 보내달라고 몇 번이나 사절을 보냈지만 [[도쿠가와 막부]]는 청나라와 충돌할 것을 우려해 [[동녕 왕국]]과의 교역 이권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사실은 1652년 명의 잔당인 계왕정권은 [[에도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에게 주순수라는 사절을 보내어 구원병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쇼군 이에미츠는 [[막부]]의 중신들과 회합하는데 이 자리에서 과격파들은 '천하의 불평 [[낭인]] 수십만을 모아 중원에 진공, 달단(만주족을 가리키는 말)을 정복하고 중원을 [[한족]](漢族)들에게 다시 회복시켜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자'고 주장하지만 합리적인 막부(幕府)의 수석각로인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는 '간신히 얻은 천하태평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남명을 돕기 위한 파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https://cafe.daum.net/historywar/Nwo/2295|#]] 이와 별개로, [[주지유|주순수]]는 일본에 남아, 쇄국 중이던 일본에 중국 문화를 재전파하는 데에 상당한 공을 세워서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기억된다. 남명이 남긴 몇 안 되는 흔적 중 하나.] [[영력제]]는 [[교황]]을 비롯해 서양 세력에도 구원을 청했으나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