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난지도 (문단 편집) ===== 난지도 사람들 ===== [[파일:Ip54OMj.png]] 21세기 시점에서는 묻힌 사실이지만, 쓰레기 매립지가 된 난지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전성기]] 때에는 거의 7백여 명이 거주했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20300209220003&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2-03&officeId=00020&pageNo=20&printNo=22075&publishType=00020|매립장 폐쇄가 된 1993년]]까지는 4백여 명이 거주했다. 이들은 [[넝마주이|쓰레기에서 쓸만한 자재를 골라 팔아서]][* 쓰레기 [[분리배출]]이 없던 시절이다. 재생이 되는 [[폴리에틸렌]] 등의 열 가소성 플라스틱과 고철로 팔수 있는 철, 알루미늄 음료수 캔 등이 주 수입원이었다.] 생계를 꾸렸다. 당시 그곳을 취재한 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살던 가건물들은 당연히 무허가인 데다가 외부인 출입도 금지된 곳이라 경찰력도 미치지 않았고, 사람이 죽어도 쓰레기더미에 묻어버리면 그만이라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한다. 그래서 당시 '''난지도에 산다'''고 하면 더러운 일을 하는 극빈층[* 그런데 이 속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있었다. 가장 많이 버는 사람들은 쓰레기차 한 대를 통째로 넘겨받아 자기네 식구들끼리 캐는 부류, 가장 못 버는 사람들은 남들이 다 캐고 남은 쓰레기에서 캐는 부류였다. ]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이들 가정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 난지도 주민들은 쓰레기서 나오는 메탄 가스로 난방과 취사를 하기도 했다고. 난지도 현지 주민들도 그렇지만, 인근의 성산동, 망원동, 수색동, 멀리는 강건너 가양동 주민들도 난지도 매립장 때문에 적지 않게 고통을 겪었다. 특히 난지도 소각장이 가동되는 시간대에는 반드시 창문을 꽁꽁 걸어잠가야 했는데, 여름철엔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1981년 유재순 기자[* 2022년 현재 JP뉴스 발행인으로,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로 [[표절]]한 '하품의 일본인'을 쓴 사람이다.]가 난지도를 무대로 한 <난지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논픽션을 내서 한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또한 1980년대 중반에 정연희가 <난지도>라는 소설을, 이상락이 <난지도의 딸>이라는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만화가 [[이향원(만화가)|이향원]]도 난지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왜 난 안 줘요?>라는 단편만화[* 이 작품에서 난지도 사람들이 쓰는 [[속어]]가 몇 개 등장하는데, [[폴리에틸렌]] 등의 열가소성 플라스틱은 ‘물렁이’, 고철 캔은 ‘알챙이’라고 부르고, 쓰레기차 한 대를 통째로 넘겨받아 자기네 식구들끼리 캐는 부류는 ‘개인차’, 남들이 다 캐고 남은 쓰레기에서 캐는 부류는 ‘뒷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를 그려 만화잡지(‘보물섬’으로 추정)에 2회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KBS]]에는 이를 소재로 난지도 특집 다큐멘터리를 2부작으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활 방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전 지구적으로 보면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서방 세계(한국도 포함)의 쓰레기를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같은 제3세계에다 팔아넘기는 사업이 국제적으로 횡행하고 있는데, 이런 나라에서 쓰레기 산을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GHKHztmQBn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