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난중일기 (문단 편집) === 이순신의 체질 === 이순신이 체력이 약하다는 설은 [[이우혁]]의 [[왜란종결자]]에서 기인하였다. 작가가 허구로 지어낸 것은 아니라 난중일기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 매우 많은데 설사병이 심해서 하루종일 뒷간을 다녀오느라 일을 못한 사례도 있고 배탈이 나거나 감기를 앓은 내용도 많다. 그래서 이순신을 허약한 체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에 48세로 당시에는 노령기에 진입한 셈이다. 선조에 의하여 극심하지는 않은 국문과 백의종군을 당하고 받은 정신적인 충격과 병이 전쟁으로 얻은 피로와 노환을 더욱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풍파를 겪으며 신체가 약화되는데도 수군 통제사로서의 격무가 눈 앞에 가득하니 몸이 망가지는 건 당연하다. 사천 해전 중에 어깨에 총상을 입었는데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치료가 완벽하지 못해서 후유증도 달고 살았다. 사천 해전이 끝나고 1년이 지나 류성룡에게 보낸 서신에 "어깨 뼈가 많이 상했고 상처에서 항상 진물이 흘러 하루종일 뽕나무 잿물과 바닷물로 소독한다."라고 서술한다. 사천 해전에서 입은 총상도 이순신의 건강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백의종군을 하기 전에도 며칠에 걸쳐 병을 앓은 기록이 흔하니 청년기에는 강건한 무장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종합하면 이순신의 평상시 건강이 어떤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은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노장인데 총상과 국문의 후유증과 산적한 격무에 시달리면서 더욱 건강이 악화된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왜란 당시의 이순신은 하급 군인이 아니라 전장을 지켜보며 책략을 펼치는 지휘관이어서 칼을 들고 다니며 적을 무찌를 정도로 강건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순신의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시라는 상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망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장성급 장교]]들도 전쟁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전쟁이 종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악화된 건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례가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