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난중일기 (문단 편집) === 보기 === * 원문 출처는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2A|한국 고전 종합 DB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보기로서 극소수 일부만을 발췌한 것이며 번역은 오역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번역문을 참고하며, 원문 전체를 읽어보고 싶은 사람은 난중일기를 자체 번역하여 올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검색해서 봐도 좋다. >'''1592년 1월 1일. '난중일기의 첫 일기'''' >---- >'''初一日壬戌。 晴。 曉。 舍弟汝弼及姪子菶, 豚薈來話。 但離天只。 再過南中。 不勝懷恨之至。 兵使軍官李敬信。 來納兵使簡及歲物, 長片箭雜物。''' >---- >초1일 임술. 맑음. 새벽에 아우 여필(汝弼)과 조카 봉(菶), 아들 회(薈)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어머니[* 이순신은 일기에서 시종일관 어머니를 天只(천지)라고 칭하고 있다.]를 떠나서 다시 남쪽에서 설을 보내니 지극한 회한을 이길 수가 없다. [[병마절도사]]의 군관 이경신이 와서 병마 절도사의 편지와 [[설날]] 선물, 장전(長箭)[* 긴 화살]과 [[편전]](片箭)[* 일명 애기살. 덧살로 쏨]과 그외 여러가지 잡물을 바쳤다. >'''1592년 1월 16일 일기''' >---- >'''十六日丁丑。晴。出東軒公事。各官品官色吏現謁。防踏兵船軍官,色吏。以其兵船不爲修繕决杖。虞候假守。亦不檢飭。至於此極。不勝駭恠。徒事肥己。如是不顧。他日之事。亦可知矣。城底土兵朴夢世。以石手往先生院鎖石浮出處。害及四隣狗子。故决杖八十。''' >---- >16일 정축.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각 관아의 관리들과 색리들이 알현하러 왔다. 방답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수리하지 않았으므로 장형에 처했다. 우후(虞候)와 가수(假守)들 또한 점검하고 경계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해괴함을 이길 수가 없다. 헛되이 제 한 몸 살찌우기만 일삼고 이리 돌보지 않으니, 다른 날의 일도 알 만한 것이리라. 성 밑의 토박이 병사인 박몽세는 석수로서 선생원(先生院) 쇄석에 쓸 돌 뜨는 곳에 가서 이웃 강아지에 해를 끼친 고로 장형 80대에 처했다. >'''1592년 2월 4일 일기''' >---- >'''初四日乙未。 晴。 出東軒公事後。 上北峯築煙臺處。 築處甚善。 萬無頹落之理。 李鳳壽之勤事。 可知矣。 終日觀望。 當夕下來。 廵視垓坑。''' >---- >초4일 을미. 맑음. 동헌에 나가서 공무를 본 후에 북봉의 연대(煙臺) 지은 곳으로 올라갔다. 지은 곳이 너무 훌륭해서 무너질 리가 만무했다. 이봉수가 정말 부지런히 일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루종일 구경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해자 구덩이를 순시했다. >'''1592년 2월 19일 일기''' >---- >'''十九日庚戌。 晴。 發廵到白也串監牧官處。 則昇平府伯率其弟來待。 妓生亦來。 雨後山花爛開。 景物之勝。 難可形言。 暮到梨木龜尾。 乘船到呂島。 則瀛洲倅與呂島權管出迎。 防備點閱。 興陽以其明日行祭先行。''' >---- >19일 경술. 맑음. 순시를 떠나 백야곶 감목관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승평 부사가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생(妓生)도 데려왔다. 비 온후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훌륭한 경치를 가히 형언하기가 어려웠다. 날이 저물어 이목구미에 이른 뒤 배를 타고 여도에 가니 영주 현관과 여도 권관이 나와서 맞이하였다. 방비를 검열하였다. 흥양 현감은 명일 제사지내는 것 때문에 먼저 갔다. >'''1592년 4월 13일 일기. (임란 발발 당일)'''[* 아직 임란 발발이 고지되지 않은 상태였다.] >---- >'''十三日壬寅。晴。出東軒公事後。射帿十五廵。''' >---- >13일 임인.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후 활 십오 순을 쏘았다[* 순(巡)이란 화살 다섯 발 쏘는 것을 말한다. 즉 십오순(十五廵)은 75발을 쐈다는 뜻.]. >'''1592년 4월 15일 일기. (임란 발발 및 전황이 이순신에게 최초로 고지됨.)''' >---- >'''十五日甲辰。晴。以國忌不坐。修廵使答簡及別錄。卽令驛子馳送。日沒時嶺南右水使傳通內。倭船九十餘出來。釜山前絶影島駐泊。一時又到水使關。倭賊三百五十餘隻。已到釜山浦越邊云。故卽刻馳啓。兼移廵使,兵使,右水使處。嶺南方伯關。亦到如是。''' >---- >15일 갑진. 맑음. 국기일(國忌日)이므로 공무를 보지 않았다. 순사(巡使)[* 순찰사(巡察使)를 말함.]에게 보내는 답장과 별록을 고친 뒤 즉시 역자(驛子)[* 역에서 일을 보던 구실아치]로 하여금 가게 하였다. 일몰 때 [[원균|영남 우수사]]가 보낸 통문을 보니 왜선 구십 여척이 나와 부산 앞 [[절영도]] 앞에 정박하였다고 한다. 동시에 온 수사(水使)의 관문(關文)[* 공문서]을 보니 왜선 삼백 오십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로 즉각 장계를 써서 보냈고 순사, 병사, 우수사에게도 공문을 돌렸다. 영남 방백의 관문 역시 왔는데 같은 내용이었다. >'''1592년 4월 16일 일기.''' >---- >'''十六日乙巳。二更。嶺南右水使移關。釜山巨鎭。已爲陷城云。不勝憤惋。卽馳啓。又移文三道。''' >---- >16일 을사. 이경(二更)[* 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영남 우수사가 관문을 보내왔는데 [[부산진 전투|부산]] [[동래성 전투|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한다. 분하고 한스러움을 이길 수 없다. 즉시 장계를 올렸고 삼도에 공문을 돌렸다. >'''1592년 5월 29일 [[사천 해전]]''' 일기[* 이충무공이 임진란 개전 후 첫 해전을 치른 5월 초순에서 중순까지의 일기는 결여(缺如)되었다고 되어있음.] >---- >'''二十九日戊戌。晴。右水使不來。獨率諸將。曉發直到露梁。則慶尙右水使來會。問賊所泊處。則賊在泗川船滄云。故直至其處。倭人已爲下陸。結陣峯上。列泊其船于峯下。拒戰甚固。余督令諸將。一時馳突。射矢如雨。放各㨾銃筒。亂如風雷。賊徒畏退。逢箭者不知幾百數。多斬倭頭。焚滅十三隻。軍官羅大用中丸。余亦左肩上中丸。貫于背。不至重傷。''' >---- >29일 무술. 맑음. 우수사가 오지 않아 홀로 제장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발진하여 곧장 노량에 이르니 경상 우수사가 와서 합류하였다. 적이 정박한 곳을 물었더니 사천(泗川) 선창에 있다 하여 곧바로 그곳에 이르렀는데 왜인들은 이미 상륙하여 산 위에 진을 치고 있었고 산 아래에 전선을 줄지어 대놓았다. 거전(拒戰)이 매우 완강했는데, 나는 제장들을 지휘하여 일시에 돌진하게 하였다. 화살을 비처럼 쏘아댔고 각양의 총통을 쏘아대니 그 대란이 폭풍 우레와 같았다. 적의 무리는 두려워하며 달아났는데 화살에 맞은 자가 몇백인지 부지기수였다. 왜인의 수급을 많이 베었고 적선 십삼 척을 불살랐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을 맞았다. 나 역시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아 등까지 관통했으나 중상에 이르진 않았다. >'''1592년 6월 2일 [[당포 해전]]''' 일기 >---- >'''初二日庚子。晴。朝發直到唐浦前船滄。則賊船二十餘隻列泊。回擁相戰。大船一隻。大如我國板屋船。船上粧樓。高可二丈。閣上。倭將巍坐不動。以片箭及大中勝字銃筒。如雨亂射。倭將中箭墜落。諸倭一時驚散。諸將卒一時攢射。逢箭顚仆者不知其數。盡殲無餘。俄而。倭大船二十餘隻。自釜山列海入來。望見我師。奔入介島''' >---- >초2일 경자. 맑음. 아침에 발진하여 곧장 당포(唐浦) 앞 선창에 이르렀다. 적선 이십여 척이 줄지어 정박해있었다. 둘러싸고 교전하였는데 [[안택선|큰 배]] 한 척은 크기가 우리 나라 [[판옥선]]과 같았다. 배 위의 장루(粧樓)는 높이가 이 장(丈)쯤 되었고 누각 위에 왜인 장수가 위엄있게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편전과 대(大), 중(中) 승자 총통을 비처럼 난사했다. [[도쿠이 미치유키|왜인 장수]]가 화살을 맞고 추락하니 모든 왜군이 일시에 놀라 흩어졌다. 모든 장졸들이 일시에 집중하여 쏘았다. 화살을 맞고 고꾸라지는 자가 부지기수였고 남김없이 모두 섬멸하였다. 잠시 후 큰 왜선 이십여 척이 부산으로부터 줄지어 바다로 나오다가 우리 군을 보고는 다투어 개도(介島)로 들어갔다. >'''1597년 9월 15일 [[명량해전]] 전야 일기''' >---- >'''十五日癸卯。晴。數小舟師。不可背鳴梁爲陣。故移陣于右水營前洋。招集諸將約束曰。兵法云。必死則生。必生則死。又曰。一夫當逕。足懼千夫。今我之謂矣。爾各諸將。勿以生爲心。小有違令。卽當軍律。再三嚴約。是夜。神人夢告曰。如此則大捷。如此則取敗云。''' >---- >15일 계묘. 맑음. 소수의 수군으로는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는 까닭에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제장들을 불러모아 약속하며 말하였다. > >"병법에 이르길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 하면 죽는다.' 하였다. 또 '한 사람이 좁은 길을 지키면 천 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지금의 우리를 이르는 것이다. 너희 각 제장들은 살 마음을 먹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 즉시 군율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두세 번을 엄히 약속하였다. > >이 밤에 신인(神人)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이리하면 크게 이길 것이요 저리하면 패할 것이니라." 하셨다.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 일기 >---- >'''十六日甲辰。晴。''' >'''早朝、別望進告:「賊船不知其數、直向我船云。」卽令諸船、擧碇出海。賊船百三十餘隻回擁我諸船。諸將自度衆寡不敵、便生回避之計。右水使金億秋、退在渺然之地。余促櫓突前、亂放地玄各㨾銃筒、發如風雷。軍官等簇立船上、如雨亂射。賊徒不能抵當、乍近乍退。然圍之數重、勢將不測。一船之人、相顧失色。余從容諭之曰:「賊雖千隻、莫敵我船!切勿動心!盡力射賊!」''' >'''顧見諸將船、則退在遠海、觀望不進欲回船。直泊中軍金應諴船先斬梟示、而我船回頭、則恐諸船次次遠退、賊船漸迫、事勢狼狽。卽令角立中軍令下旗、又立招搖旗。則中軍將彌助項僉使金應諴船漸近我船、巨濟縣令安衛船先至。''' >'''余立于船上、親呼安衛曰:「安衛、欲死軍法乎?汝欲死軍法乎?逃生何所耶?」安衛慌忙突入賊船中。又呼金應諴曰:「汝爲中軍而遠避不救大將、罪安可逃!欲爲行刑、則賊勢又急姑令立功。」''' >'''兩船直入交鋒之際、賊將指揮其麾下船三隻。一時蟻附安衛船、攀緣爭登。安衛及船上之人、殊死亂擊、幾至力盡。余回船直入、如雨亂射、賊船三隻無遺盡勦。鹿島萬戶宋汝悰、平山浦代將丁應斗船繼至、合力射賊。''' >'''降倭俊沙者、乃安骨賊陣投降來者也、在於我船上俯視曰:「着畫文紅錦衣者、乃安骨陣賊將馬多時也!」吾使金石孫鉤上船頭、則俊沙踴躍曰:「是馬多時!」云 故卽令寸斬、賊氣大挫。''' >'''諸船一時皷噪齊進、各放地玄字射矢如雨、聲震河岳。賊船三十隻撞破。賊船退走、更不敢近我師。''' >'''此實天幸。''' >'''水勢極險、勢亦孤危、移陣唐笥島''' >---- >16일 갑진. 맑음. 이른 아침 별망군이 와서 고하기를 "적선이 부지기수이며 곧바로 우리 배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즉시 전 함대에 명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백 서른이 넘는 배가 우리 전 함대를 감쌌다. 제장들은 스스로 중과부적이라고 헤아려 거듭 피하고 도망갈 궁리만 하였다. 우수사 [[김억추]](金億秋)가 탄 배는 아득한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노(櫓)를 재촉하여 앞으로 돌입한 뒤 지자, 현자, 각양의 총통을 폭풍 우레처럼 난사했고 군관들은 배 위에 빽빽히 서서 비 오듯 난사했다. 적의 무리는 당해내지 못하고 잠깐 다가오다 잠깐 물러나곤 하였는데 우리를 수 겹으로 에워싼 탓에 전세를 예측할 수가 없었고 나와 같은 배의 병사들은 서로 돌아보며 실색(失色)이 되어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타이르며 말하였다. >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를 대적할 순 없으니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전력을 다하여 적을 쏘라" > >제장들의 배들을 돌아보니 먼바다로 물러나서 관망(觀望)만 할 뿐 나오지 않았으며 배를 돌리고자 하는 눈치였다. 곧장 중군 김응함(金應諴)에 배에 댄 뒤 참수, 효시하고 싶었으나 내 배가 선두를 돌리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러 배들이 차차 멀리 물러날 터이고, 적선이 점차 압박해와서 사세는 낭패가 될 터였다. 즉시 중군영하기(中軍令下旗)[* 글자 그대로, 중군에게 명령을 내림을 뜻하는 [[깃발]].]를 세우라고 명하고 또 초요기(招搖旗)[*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깃발로, 대장이 휘하 장수들을 자신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깃발. 대장의 직품에 따라 크기나 색깔이 달랐다.]를 세우니 중군장 겸 미조항(彌助項) 첨사 김응함의 배가 점차 내 배로 가까이 왔는데, 거제 현령 [[안위]](安衛)의 배가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말하였다. > >"[[안위]]야 군법에 죽으려 하느냐? 네가 군법에 죽으려 하느냐? 도망가면 어디서 살 것이냐?" > >[[안위]]가 황망해 하며 적선 안으로 돌입하였다. 또 김응함을 불러 말하였다. > >"너는 중군(中軍)이 되어 멀리 피하기만 할 뿐 대장(大將)을 구하지 않았으니 어찌 죄를 면할 수 있겠는가?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세가 또한 급하니 일단은 공을 세우라" > >두 배가 교전의 틈으로 곧장 돌입하니 적장이 그 휘하 전선 세 척을 지휘하여 일시에 개미떼처럼 안위로 배로 달라붙었고 매달려서는 다투어 안위의 배로 올랐다. [[안위]]와 안위 배 위의 병사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미친 듯이 공격하여 거의 힘이 다할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배를 돌려 곧바로 돌입해 비 오듯 난사했고 적선 세 척을 남김없이 멸하였다. 여도 만호 송여종(宋汝悰)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丁應斗)의 배가 속속 이르러 힘을 합쳐 적을 쏘았다. [[항왜]](降倭)[* 항복한 왜군] [[준사]](俊沙)는 안골의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인데 이때 내 배 위에 타고 있다가 (바다를) 굽어보며 말하기를 "그림 무늬의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안골 진영의 적장 [[구루지마 미치후사|마다시(馬多時)]]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김돌손]](金石孫)[* 한문으로 쓸 때는 金石孫이지만 읽을 때는 '김돌손'으로 읽는다.]으로 하여금 갈고리로 그 자를 선두 위로 끌어올리게 하였다. 그러자 [[준사]](俊沙)가 보곤 뛰면서 말하기를 "이 자가 [[구루지마 미치후사|마다시]]입니다!"라고 하였다. 고로 즉시 참수하게 하였고 이에 적의 사기가 대폭 꺾였다. 전 함대가 일시에 쩌렁쩌렁 북을 치면서 일제히 전진했고 각 지자, 현자 총통을 쏘아대고 화살을 비 오듯 쏘아대니 그 소리가 강산을 진동하게 하였다. 적선 삼십 척을 쳐부수자 적 함대가 물러나 달아났으며 다시는 감히 우리 군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것은 실로 천행(天幸)[* 하늘이 준 행운]이었다. 수세(水勢)가 극히 험하고 아군의 세력도 지쳐 위태로웠으므로 당사도(唐笥島)[* 지금의 신안군 암태도와 압해도 사이에 있는 섬인 초란도를 말한다.]로 진을 옮겼다. >'''1598년 11월 17일''' 마지막 일기 >------ >十七日。昨日。伏兵將鉢浦萬戶蘇季男,唐津浦萬戶趙孝悅等。倭中船一隻。滿載軍粮。自南海渡海之際。追逐於閑山前洋。則倭賊依岸登陸而走。所捕倭船及軍粮。被奪於唐人。空手來告。 >------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은 왜의 중간 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했다. 왜적은 언덕을 따라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포획한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이 일기를 쓴 이틀 후 [[노량해전]]이 발발하고 이순신은 전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