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낙랑군 (문단 편집) === 낙랑군 관련 유물 === 일반적으로 알려진 낙랑의 대표적인 유물은 이러하다. * 평남 용강군의 [[점제현 신사비]]의 점제는 당시 낙랑군에 소속된 25개 현(縣) 가운데 하나였다. * 영광 3년명 동종(銅鍾) - [[http://db.history.go.kr|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永光 3年銘 銅鍾'으로 검색하면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악기 종'(鐘, 우방이 아이 동童)이 아니라 '술잔 종'(鍾, 우방이 무거울 중重)을 쓴다. 기원전 41년의 유물로 효문제의 군국묘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효문제묘동종', '효문묘동종'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기원전 40년 군국묘 제사는 중단되었다. 한편 SBS에서는 해상도 차이가 나는 사진이나 다른 방향에서 찍은 사진 같은 것을 모아놓고 '사진마다 모양이 다르니 날조다!' 운운하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참고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관련 석•박사의 의견은 듣지 않고 골동품 상인에게 검증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기타 부정론은 [[http://parshas.net/bg/22?category=9|여기 참고]]. * 낙랑군 봉니 - [[봉니]]는 죽간 혹은 목간을 묶고 봉할 때 썼던 흙에 도장이 찍혀 굳은 것으로, 현재 약 200여 개가량이 발굴되었다. 일부 조작된 유물이 있으나 많은 수는 진품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환빠]]들은 일부 조작품을 근거로 전부 날조품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러면 전례 없이 최초에 등장한 봉니는 왜 가치를 인정받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외에 봉니가 '편지'에 쓰이는 것이라며 낙랑군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낙랑군에 보내지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봉니는 단순한 문서 보관용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가령 [[임둔군|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의 명문이 있는 봉니가 [[랴오닝성]] 후루다오 시(葫芦岛)[* 한국식 독음은 호로도. 후루다오의 구칭이 진시(錦西, 금서)]에서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이를 통해서 지금의 후루다오 일대가 임둔이라고 설정하는 것은 서울우체국 표기가 된 편지가 부산에서 하나 발견되었다고 부산을 서울로 비정하는 것과 같다. 고고학 발굴과 정보공개가 한국처럼 치밀하게 이뤄지지 않는 중국, 북한의 특성상, 고고학 자료적인 측면에서의 한계점이 분명하다. 이러한 수량적, 자료적인 한계점이 있는 고고학 자료로 확대해석을 하는 것도 결국엔 비약일 수밖에 없고 기존의 구설을 명백히 뒤집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없다.[* 특히 임둔태수장 봉니를 언급하는 몇 뉴스기사들이나 검색자료에서는 "조작의 여지가 없는"이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대부분 자료들은 조작의 정황이랄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낙랑군의 비정에 있어 봉니만으로 위치를 비정한 것처럼 느껴지겠으나 하술된 고분자료들은 조작의 여지가 없는 자료들이다.] || [[파일:봉니비교.jpg|width=100%]] || || 좌측 : 평양 낙랑군 봉니, 우측 : 한나라 진품 봉니 || * 위조에 대한 이야기 봉니 위조에 대해서 가장 먼저 언급한 연구자는 [[정인보]]이다.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에서 봉니 위조의 내용이 언급했다. 또한 봉니는 진흙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것이라 후대까지 남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 한나라의 수도 낙양이나 장안에서도 출토된 봉니가 몇 개 안 되는데, 유독 평양에서만 봉니 수백 점이 출토되었다니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95|#]][[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 또한 낙랑 유물 발굴을 주도했다는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평양 일대 발굴 이전 이미 중국 북경에서 한나라 봉니 및 유물을 대량 입수한 사실이 있다.[[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7|#]] 평양 낙랑군의 봉니와 한나라 진품의 봉니는 형태와 글씨의 서체도 다르다.[[http://enjoyjap.egloos.com/1783403|#]] 다만 어디까지나 일장일단이 있는 의문 제기 정도의 내용이다. 한국과 북한, 중국, 일본의 발굴과 보고 방식의 차이가 있기에 공개된 자료 수량만으로는 조작이 완전히 맞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순한 형태적 차이나 서체의 차이 등으로 한나라의 것이 맞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합리적인 분석이 아니고, 낙랑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나라 수도의 물건들과 동일할 필요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