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혜석 (문단 편집) === 부정적 행보 === >''' - 정조는 취미이자 자유다.''' > - '''불륜'''은 '''부부관계'''를 '''돈독히''' 만든다. > - '''성적으로 자유로운 창녀가 부럽다.''' 여창을 넘어 '''남창을 만들자''' > - '''남자는 바람을 피우고''' 아내를 괴롭게 만든다. > - 남자는 여자에게 정조를 강요하고 자신은 정조를 지키지 않는다. > - '''아이'''는 '''부모의 살을 좀먹는 악마다.''' > - '''모성애'''는 '''학습과 세뇌의 결과물'''이다. > - '''결혼'''은 '''여성의 지옥'''이고 '''임신은 불행'''이며 '''육아는 저주'''이다. > ---- > 이혼고백서의 내용 예전부터 "기생이야말로 진정한 사랑꾼이다", "모성애는 본능이 아닌 강요이다.", "현모양처는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등등 본래부터 과격한 주장들을 해왔으며불 이곳저곳에서 비판이 있던 나혜석은 불륜사건 이후 유명한 이혼고백장을 발표하게된다. 그녀는 이혼고백장을 통해 기존보다 더욱 과격한 성격의 내용들로 여성들의 권리향상을 주장하고 남성들을 비난했다. 허나 뒤에 서술하듯 여성들의 옹호보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반응들은 과거 나혜석이 그랬고, 현대 그녀를 옹호하는 입장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 "가부장제에 세뇌당한 결과" 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중 하나로 [[내로남불|이혼고백서가 자신의 불륜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쓰였졌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억압으로의 해방"을 말하고자 하였을지 몰라도 그렇다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게 문제였다. 현대에 저러한 주장을 하여도 논란이 되는데 당시에 저런 임신과 출산을 경멸하는 발언들을 포함해 자기 자식들까지 혐오하는 발언을 해가면서 비난했기 때문에 기존의 남성들을 넘어 여성들에게까지 비판적인 목소리를 들었다.] > - 나는 결코 내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편에게 정이 두터워지리라 믿었다. 구미 일반 남녀 부부사이에 이러한 공연한 비밀이 있는 것을 보고 또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남편이나 본부인을 어떻게 하지 않는 범위 한의 행동은 죄도 아니요 실수도 아니라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만 할 감정이라 생각한다 > - 배우자를 잊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혼외 정사를 벌이는 것은 죄도 실수도 아닌 가장 진보된 사람의 행동일 뿐이다. > ---- > 이혼고백서와 사랑의 자유 중 즉 [[개소리|"사랑이 변치 않는다면 바람이 아니며 불륜은 정이 두터워지는 진보된 행위다."]] 라고 서술한 것. 나아가 최린이 자신을 먼저 유혹해서 일어난 일이라던가, 남자들은 첩을 들이면서 여자들에게 외간 남자를 사귀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불평등하다 주장했다. 이와같이 "조선 남자들은 이기적이며 정조를 강요한다." "남자도 정조를 지켜야 한다."라며 남성들의 모순과 외도를 비난하는 동시에 반대로 본인의 모순과 외도엔 "정조는 취미이다.", "혼외정사가 부부관계를 끈끈히 한다."며 오히려 옹호하며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에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사건이전 혹은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불륜행위를 정당화하고 반대로 남성들에게 책임을 묻는식의 주장들은 당시에 이혼고백장이 여성운동을 위해서라기 보단 자신의 불륜을 합리화 하기 위한 글이라는 시선이 강했다. 때문에 여성의 자립을 주장하는 글을 서술하였지만, 오히려 남성들보다 여성들의 반발과 비판이 더욱 커지게 된다.[* 서울의 한 인텔리 출신 가정주부는 나혜석을 음란하다며 그녀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고, 평양의 한 주부는 "필요없는 폭로는 악취미입니다. 사남매의 어머니로서 그 노출증적 광태를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며 나혜석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칼럼에 기고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녀는 아동학대 논란이 있는만큼 평소 자신의 자식들을 악마라 칭했으며 육아를 저주, 임신은 불행이라고 표현했으며 더불어 아이들에게 자신을 사회의 피해자라 칭하고 자식들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 하기도 했다. > 사 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자유로운 사랑을 주장한 나혜석은 크고작은 외도들을 저지르는 바람에 자식들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헤어져야만 했다. 이후로도 "자식은 어미의 살을 파먹는 악마다." 또는 "내 살을 먹고 자란 괴물들" 등등 사상을 위해 자신의 자식들마저 부정하는 발언들을 지속했다. 그녀가 당시에도 유명인사다 보니 사 남매는 "제 엄마에게 악마소리 듣는 애들" 이라는 주변의 시선과 괴롭힘을 피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어머니가 나혜석이란 사실을 숨겼으며 어머니가 자신들을 장애물 취급하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년의 나혜석이 친자식들을 찾아왔을 때도 자식들이 그녀를 보고싶지 않다 외면했다.[* 한 번은 둘째아들 김진이 중학교 시절 딱 한 번 학교까지 찾아온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으며 이후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버지 김우영은 절대 다시는 만나지 말라 전했다.] 어느정도였냐면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자신들과 아버지를 욕하는 친모보다[* 반대로 자식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우영은 전처 나혜석에 대하여 크게 욕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그래도 마지막까지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새어머니를 더욱 좋은 어머니라 여기고 따랐다. 둘째 김진은 자서전에 나혜석이 그립지만 동시에 원망하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고 나혜석이 파킨슨병과 실어증에 시달릴 때도 어머니를 멀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