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혜석 (문단 편집) == 개요 ==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 운동가, 언론인. [[차미리사]]와 같은 여성 지식인으로 평가를 받았다.[* [[차미리사]]와 나혜석은 [[틀:덕성학원|학교법인 덕성학원]]의 전신인 조선여자교육회 설립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혜석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기독교계 [[보수주의 페미니즘]]의 시초는 바로 [[김활란]]이다. 나혜석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김활란의 회유를 거부했다.] [[본관]]은 [[나(성씨)|나주]](羅州), [[아호|호]]는 정월(晶月)이다. 조선 인천부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출생으로 수원 [[삼일소학당]]과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진명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의 [[여자미술대학|여자미술전문학교]][* 현 [[여자미술대학]]. 일본의 명문 [[미술대학]] 중 하나로, 약칭으로는 '조시비'라고도 부른다.]에 [[유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당시 [[여자미술대학|여자미술학교]]에서도 서양화를 전공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양재나 자수를 전공하는 학생이 많았다.] 귀국 후에는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내기도 했고, [[김일엽]]과 함께 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 발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1대 [[페미니스트]]라고도 불린다. 그녀는 일본 유학 당시 읽은 여성잡지를 통해 여성 계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남녀 평등과 여성의 권리, 당시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글들을 투고하는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보가 극단적으로 [[여성우월주의]]적이고 과격하다는 비판도 있으며, 특히 친자식에 대한 그녀의 태도나 [[최린]]과의 불륜 행위를 비롯한 그녀의 사생활은 당대에 많은 비판거리가 되었다. 또한 독립 운동가라는 평가와 친일이라는 논란이 공존하고 있으나 대체로는 둘 다 부정되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