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즈란 (문단 편집) ==== 나즈란 협정 (631년) ==== >하나님을 대신하여 내가 협약을 맺었기에, 무슬림들은 기독교도를 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지원이나 도움 없이 그들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ㅡ 무함마드, 나즈란 협정을 맺으며 7세기 들어 [[히자즈]]에서 발흥한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 전역으로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통상적으로 군사 행동에 앞서 서신을 보내어 개종을 권유했는데, 동로마 제국이나 사산 제국 외에 나즈란에도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서신을 전달하였다. 나즈란 주민들이 거부하자 무함마드는 이례적으로 알 무기라를 재차 파견해 이슬람을 더 설명하게 하였다. 그러자 나즈란측 역시 킨다 부족장 압둘 마시흐, 주교 압둘 하리스 등 45인의 학자들을 포함한 60인의 대표단을 [[메디나]]로 파견하였다. 무함마드는 일부 무슬림들의 반발에도 대표단이 모스크에서 기도할 수 있게 허가하였고, 그들은 동쪽을 보고 예배를 올렸다. 무함마드가 제공한 숙소에 머물며 대표단은 신학 토론을 벌였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슬람과 양립할 수 없고, 이슬람이 참된 종교라고 결론내렸다. 양측은 서로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지만, 친선을 맺었다. 일명 나즈란 조약이라 불리는 평화 협정에서 기독교도들은 생명, 종교, 재산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기독교 신앙과 관습은 침해되지 않고, 십자가 역시 파괴되지 않도록 합의되었다. 그 대가로 기독교도들은 [[지즈야]]를 납부해야 했지만 십일조 (우슈르)는 면제되었고, 세금은 그들의 재산을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되었다. 하지만 무함마드 사후 10여년이 흐르고 칼리파 [[우마르]]는 '아라비아 반도에는 두 종교가 공존할 수 없다'는 [[하디스]]를 근거로 들며 나즈란의 기독교도들에게 도시를 떠날 것을 명하였다. 따라서 다수의 아랍계 기독교도들이 시리아나 이라크로 향하였다. 전자는 시리아 남부 하우란 지역에 고향의 이름과 같은 나즈란을 세웠고, 후자는 [[쿠파]] 주변에 앗 나즈라니야를 세워 정착하였다. 다만 나즈란의 기독교도가 전부 떠난 것은 아니었고, 9세기까지 상당수 남아있었다. 알 하디 야흐야가 897년 자이디 이맘국을 세울 때에도 나즈란의 기독교도와 유대인들과 협력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