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즈란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나지란 아랍.jpg|width=800]] 알 우크두드 유적 지명 나즈란의 유래에 대해서 현지인들은 첫 정착민인 나즈란 빈 자이단 빈 사바 빈 야흐줍 빈 야룹 빈 카흐탄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본래 지명은 알 우크두드 (الأخدود)였다. 고대 예멘에서 [[히자즈]], 시리아, 이집트, 바레인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모두 이곳을 지났기에 도시는 번성하였다. 기원전 685년 [[마리브]]를 중심으로 한 [[사바]] 왕국의 카르빌 와타르 1세가 일대를 점령하였다. 사바 왕국 시기에 도시는 라그마트로 불렸고, 기원전 510년 국왕 이티아마르 바인에 의해 파괴당하기도 하였으나 곧 재건되었다. 그러던 기원전 25년, 로마의 이집트 총독 아엘리우스 갈루스는 예멘 (아라비아 펠릭스) 원정에 나서 나즈란에서 현지 군대를 격파하고 도시를 점령하였다. 갈루스는 로마인들에게 '네그라나'라 부른 나즈란을 거점으로 삼고 남하하였으나 마리브 함락에 실패하고 후퇴하였다. 이렇듯 나즈란은 예멘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275년에 사바 왕국 대신 그 방계 가문이 세운 [[힘야르 왕국]]이 예멘의 패권국으로 떠올랐고, 나즈란 역시 힘야르 군주 샴마르 야흐리쉬에게 점령되었다. 다만 독립성이 강했던 나즈란 주민들은 바다 건너 [[악숨 왕국]]에 복속하며 자립을 시도하였고, 이에 후자에선 총독 스클름클름을 파견하였다. 다만 샴마르의 후계자인 일샤라흐 야흐디브에게 진압되었다. 328년에는 [[라흠 왕국]]의 군주 이므르 알 카이스 빈 암쿠의 공격을 받기도 했던 나즈란은 5세기 초반에야 확실히 힘야르 왕국령이 되었다. 한편 악숨 왕국의 영향력은 여전하였고, 320년대 [[악숨]]이 기독교를 수용하자 나즈란에도 역시 기독교가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354년에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파견된 [[소코트라 섬]] 출신의 [[아리우스파]] 주교 '인도인' 테오필로스가 남부 아라비아에 파견되어 기독교를 포교했다고 한다. 다만 일대의 패권국인 힘야르 왕국은 380년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고, 이는 향후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