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주시/역사 (문단 편집) === [[고려]] === 나주는 왕건의 적통을 이어받아 왕위에 오른 [[혜종(고려)|혜종]]의 출생지이기도 하였으므로, 왕실의 어향(御鄕)이라 불리게 된다. 983년(고려 [[성종(고려)|성종]] 2년) 십이목(十二牧)이 설치될 때 나주에 나주목(羅州牧)이 설치된다. [[여요전쟁]] 때는 [[현종(고려)|현종]]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1018년(현종 9년), 현종은 자신이 위기일 때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나주(羅州)와 전주(全州)의 첫 글자를 따 전라도(全羅道)를 만드는데 광역도의 시작이다. 다른 광역도들은 300여 년이 지난 후에 생긴다. 이렇게 [[5도 양계]] 제도가 실시되면서 [[전라도|전'''라'''도]] 나주목이 되었으며, [[전주시|전주목]]과 함께 도의 이름에 들어갈 정도로 큰 도시였다.[* 사실 전라도에서 제일 큰 도시는 이때까지도 광주였다. 마한시절부터 고려까지, 도독부는 항상 이곳에 위치했다.] 현종은 국가 행사인 [[팔관회]]를 개경, 서경, 나주 이렇게 3곳에서 개최하도록 하였다. 같은 시기 [[다시면]] 지역에 있었던 회진현이 나주목에 병합되었다. 이외에도 고려시대에 일어난 [[백제부흥운동]]이었던 [[이연년 형제의 난]]이 [[김경손]]에 의해 나주에서 진압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