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주시/역사 (문단 편집) === [[삼국시대]] === 자세한 부분은 [[침미다례]] 참조. 사실 침미다례의 원래 주도 세력은 해남 군곡리 세력이었다가 근초고왕 시기에는 해남 신월리, 영암 시종면 양대 세력으로 바뀐 상황이었는데, 해남 신월리가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타멸당하고 영암 시종면은 굴복했었다. 하지만 백제는 영암 시종면을 믿을 수가 없었는지 나주 반남면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4102315195949310|#]] 바로 이 시점부터 나주가 영암과 해남을 제끼고 번영하기 시작한다. 현 반남면에는 그 규모와 숫자로 따지면 경주의 왕릉들과 맞먹는 대형 고분군이 있는데, 그 전에도 어느 정도 세력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영암 시종면 세력의 분가 격이었다. 그러다 백제가 영암 시종면 세력을 믿을 수 없어 불미국을 키워주기로 마음 먹었고, 불미국 세력이 옛 본가였던 영암을 제치고 부쩍부쩍 커지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였다.[* 고려 시대 때 설치된 행정구역인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인데, 백제의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영암이 그 자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때 역전된 영암과 나주 사이 구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6세기 중반에 [[백제]]의 직접 지배 지역으로 개편되면서 불미국이 있던 지역은 발라군(發羅郡)이 되었다. 백제 멸망 후에는 [[당나라]]에서 [[웅진도독부]]를 설치하며 대방주(帶方州)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