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주시/역사 (문단 편집) == 쇠퇴의 원인 = 철도와 도로? == 일각에서는 나주시 쇠퇴의 주 원인을 철도와 도로의 발달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근대 이전의 모든 국가의 물류는 수운이 주류였고, 산세가 험한 [[한반도]]는 더욱더 그랬기 때문에 수운이 번성했을 때는 [[영산강]]과 [[전라도]] 최대의 내륙 항구 '''영산포'''를 끼고 있는 나주도 번성했었다. 물론 이후에도 [[호남선]]과 [[국도 1호선]]이 나주를 지나게 되었지만, 이제는 경유지 중 하나로 전락해 호남선의 종점인 [[목포시|목포]], 호남선과 [[경전선]]의 교차점인 [[광주광역시|광주]]에 떠밀려 쇠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별로 타당하지 못한 주장이다. 물론 [[목포시]]의 경우에는 [[호남선]]의 종점이자 항구도시라는 점이 발전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장 [[인천광역시]](원인천)와 [[부산광역시]]도 각각 [[경인선]]과 [[경부선]]의 종점이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항구가 있어 여객과 화물을 환적하는 허브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목포시]]는 서해와 남해에 접해 섬이 많고 수심이 얕은 지역적 특성과 예나 지금이나 개발에서 소외된 [[전라도]]의 최서남단이라는 점 때문에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광주광역시|광주]]의 경우 [[철도]]의 교차점이라 부흥했다기에는 허점이 많다. 첫째로 지금이야 [[광주송정역]]이 매우 커진 데다가 광주 시가지가 확장되어 어찌어찌 시내로 들어와 있지만, [[호남선]] 개통 당시부터 [[광산군]] 및 [[송정시]]의 광주 편입 시기까지는 광주 시가지와는 이어지지 않은 별개의 지역에 가까웠던데다가 [[송정리역]]도 그다지 큰 역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광주로의 편입보다 [[전라남도]] [[송정시]]로의 승격이 먼저 이루어졌을까? 둘째로 [[경전선]]의 광주 시내 구간의 전신인 [[전남선]]의 개통 시기는 [[1922년]]으로, 광주가 전남 지역의 중심이 된 지 30년 가까이 후의 일이었다. 더구나 전남선은 개통 당시부터 [[1944년]] [[광주역|광주]]~[[담양역#s-2|담양]] 구간 폐선까지 기껏해야 [[송정리역]]에서 [[광주역]]을 거쳐 담양을 잇는, 다시 말해 당시 기준으로 오로지 [[호남선]]에서 [[광주광역시|광주]]만을 이었던 노선임을 감안하면 광주가 [[호남선]]과 [[경전선]]의 분기점이라 발전했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주장이다. 타 지역의 사례를 살펴보자면 전통적으로 지역의 중심도시 내지는 대도시 역할을 하던 곳 중 현재까지도 확고한 지역 중심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충청북도]] [[청주시]], [[전라북도]] [[전주시]] 등이 있는데,[* [[강원도]] [[춘천시]]는 [[강원도]]에서 [[원주시]]에 이은 제 2의 도시라 입지가 조금 애매하며, [[경상북도]] [[안동시]]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지역의 수부도시인 [[대구광역시|대구]]가 광역시로 독립하고 나서도 조금 지난 21세기에 들어서야 [[경상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고, 이마저도 북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불완전하다.] 이 두 지역의 공통점은 지역에서 처음 생긴 간선 철도인 [[경부선]]과 [[호남선]]이 빗겨간 도시라는 점이다. [[전주시]]와 [[청주시]]를 잇는 [[전라선]]과 [[충북선]]이 있지만, 두 노선 모두 첫 개통 시점에는 인근의 간선 노선 역[* [[조치원역]] 및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해당 지역을 잇기 위해 생겨난 노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구나 [[경부선]]이 [[1905년]]에 개통한 것과 달리 [[청주시]]를 경유하는 [[충북선]]은 [[1921년]]에야 개통되었다. 만약 철도의 분기점이 발달한다는 공식이 맞았다면 [[청주시]] 대신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이, [[전주시]] 대신 [[익산시]]가 크게 발달했어야 정상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하였다. 즉 [[대전광역시]] 등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 [[대전광역시]]도 발전에 경부선-호남선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이 다름아닌 충청남도청이었음을 감안하면 예외라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 역사에서는 철도가 지역의 발전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발전한 지역에 철도가 끌려 들어가는 것에 가깝다. 반대로 살펴보자면, [[청주시]]와 [[전주시]]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일제강점기 이래로 도청이 계속해서 해당 지역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시대 이래 [[충주시]]에 있던 [[충청북도]]의 중심을 [[청주시]]로 옮기고부터 [[충주시]]는 쇠퇴하고 [[청주시]]가 발달했다는 것은, 도시 쇠퇴 및 발달의 정도는 다르지만 [[전라남도]]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결국 광주가 지금과 같이 발전한 데에는 [[전라남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도청이 광주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윤웅렬]]이 나주부 관찰사이던 시절 처소를 광주로 옮기지 않아 도청이 계속 나주에 있었다면 나주시는 [[전주시]]처럼 전남 지역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며, [[광주광역시]] 대신 '''나주광역시'''로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을 수 있다. [[분류:향토사]][[분류:나주시]]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나주시, version=81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