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선정벌 (문단 편집) === 중원: 청나라의 상황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명말청초)] 청나라는 졸지에 후방의 국경 지대에서 정체 불명의 이민족들이 현지 부족들을 약탈하고 요새까지 정성들여 알박으며 남하하는 꼴을 보게 되었는데, 이들이 엄청난 속도로 [[송화강]]을 넘어올 판이 되자, 이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바로프 원정대의 약탈에 시달리던 원주민들은 청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청은 이를 받아들여 1652년 닝구타(寧古塔, 영고탑)[* 무슨 탑 이름 같지만 한자로 가차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고 [[만주어]]로는 6개라는 뜻이다.] 주둔 사령관 하이서의 지휘 하에 군사 2,100명을 아무르강에 파견했다. 당시 아무르강에서 열심히 행패를 부리던 하바로프 원정대는 고작 206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자그마한 부대였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하이서가 손쉽게 이들을 무찌를 것처럼 보였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xinga_territory.jpg|width=75%]]|| || [[명청교체기]]이자 러시아의 침입이 벌어지던 1650년대 말, 반청복명파인 [[정성공]] 군대의 최대 확장 범위. 정성공이 중국 경제의 핵심이자 명나라 전기의 수도권이었던 [[장강]] 하류, 그리고 무역 거점들이었던 동남 연해를 점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러시아의 침입 시점은 [[명청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따라서 청나라는 정규 병력을 본토인 만주에 배치해둘 수 없었다. 이자성이 명을 멸망시키고 [[산해관]]이 뚫린 이후 대세는 청 측으로 완전히 기울었으나, [[명나라]] 잔당과 부흥파의 군대는 여전히 강남 곳곳에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가령 [[정성공]]의 군대가 [[난징시|난징]]을 포위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한 게 나선정벌이 벌어진 지 1년 뒤의 일이었을 정도로 중원의 전황은 여전히 매우 급박했다. 때문에 청나라는 [[팔기군]]과 화기를 다루는 한인 [[녹영]]병 주력을 [[남명]]을 포함한 각지의 명나라 잔당과의 전투에 투입해야 했다. 만주 북방의 청군은 원주민들의 자경대뿐일 정도로 취약한 상태로 남겨졌다. 그리하여 하이서가 동원한 군사 2,100명 중 1,500명은 기껏해야 날붙이 조금 챙긴 현지 부족민이었고, 청나라 정규군은 600명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청군 600명 중 포수는 30명뿐이었다. 대포를 동원하긴 했지만 고작 6문으로, 하바로프 원정대가 알박은 요새를 공략하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하바로프 원정대도 일확천금 노리고 극동으로 달려온 어중이떠중이 강도떼였기에 이들을 제압하려는 시도는 처음엔 제법 그럴싸하게 굴러갔다. 하이서의 부대는 하바로프 원정대가 숨어들은 요새의 벽을 무너뜨리고 요새 내에 진입하는데 성공하기까지했다. 문제는 여기서 하이서가 이 강도떼들을 너무 얕잡아 본 것. 전투가 쉽게 풀리는 것을 본 하이서는 이대로 이 "나선" 나부랭이들을 싹 포로로 잡아서 바치겠다는 생각을 했고, 따라서 나선 놈들을 해치지 말고 생포하라고 명령했는데, 무너진 요새 벽을 넘어 들어가보니 하바로프 원정대가 대포를 잔뜩 설치해둔 상태로 농성중이었다. 대충 날강도 놈들을 때려잡을 생각이었던 하이서의 병사들은 졸지에 눈 앞에서 포탄이 날아드는 사태에 직면했고, 별다른 대처도 못한 채 우왕좌왕 하다가 대포알에 볼링핀 마냥 쓸려나갔다. 결국 청군은 무려 '''676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참패했다(하바로프 원정대의 전사자는 10명). 이 황당한 참사를 전달 받은 [[순치제]]는 하이서를 처형해버렸다. 이 나선 나부랭이들이 절대 우습게 볼 것들이 아니 느낀 청나라는 나선을 정벌하기 위해 좀 더 제대로 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였고 그에 따라 샤르후다를 나선 정벌 임무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샤르후다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 들어온 장수 중 하나였는데, 나선 정벌 중의 활약을 보면 꽤나 유능한 장수임이 분명하고, 당장 명나라를 끝장내느라 정신 없었던 청나라 입장에선 동원 가능한 최대한의 전력을 내보낸 셈. 샤르후다는 나선이라고 대충 이름 붙인 정체불명의 도적떼들이 실상 매우 강력하게 무장된 군사집단이며 그들을 절대 쉽게 쫓아낼 수 없으리라 판단해 2년에 걸쳐 신중하게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청나라가 사르후다에게 줄 수 있는 지원이 너무 부족했다. 특히 사격 병과가 전무하다시피했다. 요새에서 알박고 대포를 쏴대는 적군을 잡으려면 그들을 멀리서 쏴죽여줄 총잡이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 문제를 매우 걱정한 샤르후다는 총잡이들을 끌어오고 싶어했으나, 그의 휘하에는 마땅한 총잡이가 없었고, 팔기군에서 빼오려 해도 만주팔기나 몽골팔기에는 쓸 만한 포수가 드물었다. 그나마 총 좀 쏘는건 한족 포수였는데, 상술한대로 이들은 대부분 녹영에 소속된 인력으로 만주의 소규모 적군 좀 해결하겠다고 빼서 보내줄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나선의 약탈을 크게 우려하던 청나라는 결국 사르후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나마 들어주기로 했고, 그 방법이란 조공국인 조선에서 포수를 파병 받는 것이었다. 청나라는 이미 10년 전의 [[송산 전투]]에서 [[조선군]]과 연합작전을 하며 조선군 조총병의 지원사격에 많은 도움을 얻었던 바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