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르세스 (문단 편집) === 대기만성의 시작 : [[니카의 반란|니카 폭동]] === [[프로코피우스]]의 저술에 의하면 530년 경, 나르세스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심복이 되어 재정 관리, 제국 금고 관리를 맡았고 근위대장까지 역임하였다고 한다. 52세의 나이로 출세 가도에 오른 그는 2년 후에 터진 니카의 반란에서 활약하며 [[대기만성]]하게 된다. 만년 대립하던 녹색당과 청색당이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키자, 황후 [[테오도라(6세기)|테오도라]]는 당시 환관이었던 나르세스에게 보물 창고에서 보화 일부를 꺼내어 황실에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청색당의 지도부에 뇌물로 바치게 하였다. 뇌물을 가지고 청색당의 지도부를 만난 나르세스는, 테오도라 황후는 공공연한 청색당 지지자이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도 역시 그러하다는 점, 유스니누스와 유스니티아누스 공동 통치 시기에 청색당에 내려진 은혜를 상기시키고 반란군이 황제로 옹립하려는 [[히파티우스(500년 집정관)|히파티우스]]는 녹색당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나르세스의 이간책으로 청색당은 녹색당과 결별, 다시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에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제국군을 이끌고 히드포룸에서 잔여 녹색당을 학살하며 반란은 종결되었다. 이후 나르세스와 벨리사리우스는 제국에서 황제 다음 가는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