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당전쟁 (문단 편집) ==== 비열홀 반환 문제 ==== >또한 비열성(卑列城)은 본래 신라 땅이었는데 고구려가 쳐서 빼앗은 지 30여 년 만에 신라가 다시 이 성을 되찾아 백성을 옮기고 관리를 두어 수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당나라가 이 성을 가져다 고구려에 주었습니다. 또한 신라는 백제를 평정한 때부터 고구려 평정을 끝낼 때까지 충성을 다하고 힘을 바쳐 당나라를 배신하지 않았는데 무슨 죄로 하루 아침에 버려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이와 같이 억울함이 있더라도 끝내 배반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698&cid=49625&categoryId=49798|《삼국사기》 제7권 <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비열홀은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 일대이다. [[진흥왕]] 17년인 556년에 비열홀주가 설치되었다가 나중에 폐치되었고, 다시 복치되었다가 폐치되기를 반복했다. 위의 기록은 설인귀에 대해 문무왕이 답신을 보낸 <답설인귀서>의 내용으로, 신라가 비열성의 처리 과정에서 당나라의 행동에 대해 불평하는 모습이다. 문무왕은 비열성이 원래 신라의 땅이었는데, 고구려에게 빼앗긴 지 30여 년 만에 되찾아, 백성을 이주시키고 수비를 하였는데 이를 당이 도로 고구려에게 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라가 비열홀주를 되찾은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무왕 8년인 668년의 비열홀주 설치에 대응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전 30년간 고구려가 비열홀을 지배했다는 말을 소급해서 30년 전으로 가 보면 선덕여왕 시기 637년의 우수주 설치가 나타나는데, 이 우수주(춘천)의 설치는 비열홀의 상실에 따른 통치 지역의 개편이었다. 고구려 원정 과정에서 보면 비열홀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이 지역을 경유해서 가거나 혹은 이 지역에서 병력을 진발하는 등 상당한 요충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슬라(何瑟羅) 또는 하서량(河西良)로 고구려가 이름을 붙인 강릉 역시 선덕여왕 때 빼앗긴 것으로 추정되므로 비슷한 시기 고수전쟁 당시 상실한 영토의 회복을 위한 고구려의 반격으로 영동일대가 상실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영동에 설치된 신라판 광역시쯤 되는 하서소경이 태종 무열왕 때 소경이 폐지되었는데 이는 기록상으로도 영동 실함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때이다. 촉한시대 경조윤·우부풍·좌빙익·홍농군·하남군·하내군·하동군 총 7곳을 담당하는 사례교위부와 그곳의 수장인 사례교위 같은 취급을 받은 것. 이렇듯 668년 고구려 멸망을 전후로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던 비열홀을 신라가 재빨리 확보했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다시 고구려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물론 이때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안동도호부의 관할로 귀속되었다고 보는 게 옳은 해석이다. 하지만 669년 무렵의 기록을 보면 신라가 비열홀 등에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진휼한 기록이 보인다. 신라는 당나라가 비열홀을 반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나라와의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왜 당나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열홀에 집착하였을까? 안변은 평양·서울과 더불어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당이 평양과 안변 지역을 장악할 경우 신라는 서울 지역을 지키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신라가 서울과 안변 지역을 장악할 경우 평양 지역을 압박하는 데 유리해진다. 이렇듯 비열홀(안변)은 신라가 평양의 안동도호부를 견제하고, 한강 하류 지역을 방어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군사전략적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비열홀은 평양 일대와 한강 하류 일대를 견제할 수 있고, 접근로가 제한되어 있는 천혜의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에, 신라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훈, 《나당전쟁연구》pp.77] 게다가 장기간의 전쟁을 통해 되찾은 비열홀 지역이 문무왕에게 주는 위신의 문제도 있다. 이미 전쟁의 성과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는 상태에서 신라가 당에 굴복하여, 비열홀에서까지 물러난다면 문무왕의 위상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