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당연합군 (문단 편집) === [[고구려]]의 남하 === 고구려가 [[광개토대왕]]의 치세였던 시절, [[신라-왜 전쟁|왜나라가 신라로 침공]]하였으며, 신라는 이를 조속하게 해결하고자 광개토대왕 시절의 고구려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래서 고구려는 5만 군사를 보냈다. 그러나 지원을 온 고구려 군이 이 후로 신라에 눌러 앉았으며, 신라는 그 이후 고구려의 [[내정간섭]]으로 속국 신세를 격어야 했다. [[자비 마립간]] 치세의 신라는 고구려 장수왕 시절에 신라 내의 고구려인들을 제거하는 시도를 했으며, 이후 장수왕은 486년에 말갈 세력의 병사들로 하여금 신라를 공격하게 해서 신라의 실직주성이 합락되도록 했다. 당시 [[나제동맹]] 관계였던 개로왕 시절의 백제는 말갈 세력이 신라의 실직주성이 합락시킨 후, 469년에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면서, 북한산성 그리고 아신왕 시절에 충성한 쌍현성을 보수하고, 청목령에 목채 진지를 구축하였다. 472년, 백제 [[개로왕]]은 [[북위]]의 [[헌문제]]에게 고구려 침공을 여러번 요청했으나 이러한 협상은 번번히 결렬되었고, 개로왕은 북위에게 보내던 조공을 중단하였다. 고구려 [[장수왕]]은 이전부터 승려 도림을 첩자로써 백제에 파견하는 등 기회를 살펴왔다. 그리고 475년, 마침내 백제로 남진하였으며, 이 때에 당시 수도였던 [[위례성]](한성)까지 고구려에게 빼앗기고 개로왕은 참살되었다. 480년, 장수왕은 또 말갈 세력에게 신라를 공격하게끔 하였으며, 이로부터 1년 후인 481년에는 아예 고구려의 정예군도 신라로 출병시켜서 호명성 등 신라의 7개의 성이 함락당하고 미질부(지금의 포항)까지 몰렸으나, 고구려 군대는 신라, 백제, 가야 연합군에 의해서 퇴주하였다. 484년, [[백제-북위 전쟁|북위가 백제를 침공]]하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장수왕도 고구려 군대를 남진시켰다. 그러나 고구려 군대는 모산성에서 나제 동맹 군대에게 대패하였다. 488년, 북위가 또 백제를 침공하였으며, 489년에 장수왕은 또다시 신라를 침공해서 과현 지역까지 진군하였고 신라의 호산성을 함락시켰다. 490년, 북위가 또다시 백제를 침공했으나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등에 의해 수십만 기병을 잃었다. 그리고 491년, 장수왕은 98세의 나이에서 사망[* 중국 사서 기록에도 있는 내용이다.]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