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희갑(음악인) (문단 편집) == 생애 == 본관은 수안(遂安)이며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대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한국 전쟁 때였던 15세 때 남하하여 18세까지 경상북도 대구에서 지냈다. 1955년 [[영남공업고등학교|대구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이 해 미8군 무대에서 기타 연주자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4년 록 음악 밴드 키보이스의 음반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음반 프로듀서와 작사가 겸 작곡가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을 출발, 이후 조용필, 김국환, 최진희 등을 비롯한 가수의 히트곡을 내었다. 부인인 소설가 겸 작사가 양인자와의 합작을 비롯하여 김중순, 지명길, 지웅[* 본명 김유생,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외손자이자 독립운동가 부부인 [[신정완]], 김재호의 아들이다. 1960년대 봉봉사중창단으로 활동했으며 1968년 탈퇴 후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기자, 문공부 공보관으로도 활동하였다.], 박건호와의 합작도 특히 많다. 그 밖에 자신이 작사와 작곡을 모두 한 곡도 다수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작곡 제작하였다. [[작사가]] [[양인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 대해 '새로운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라고 [[대본]]대로 [[디스]]했던 그 인물이다. 실은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김국환]]의 '타타타'를 작사한 80년대의 레전드.]의 남편으로, 한 때는 부부가 같이 콤비로 음악 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 '''[[신중현]]'''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뮤지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