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훈(농구)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선수 시절 === 대전고를 나와 연세대로 진학했다. 키가 크다고 농구를 시작해서 한 때 농구를 안 하려고 했었으나, 키가 갑자기 15cm가 더 커지면서 졸지에 장신 슈터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연세대로 스카우트 될 수 있었다. 다만, 스카우트 과정에서 원래 [[홍익대학교]] 진학을 하려다가 번복하는 바람에 홍익대와 연관된 농구부 코치에게 죽도록 맞고, [[최희암]] 감독이 시켰다는 각서를 쓰고 농구를 그만둘 뻔했다고 한다. [[파일:연세대 시절의 김훈-우지원-석주일.jpg|width=320]] 연세대 입학시절에는 92학번 동기인 [[우지원]], [[석주일]]에게 밀렸지만, [[서장훈]]의 입학으로 연세대가 1가드-3포워드-1센터 시스템으로 바꾸면서 우지원, 석주일보다 뛰어났던 외곽 수비력과 볼 핸들링, 개선된 3점 슛 능력덕에 석주일을 밀어내고 본격에 주전으로 발탁되었다. [[농구대잔치]]에서의 맹활약, 특히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가 20승 1패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차지할 때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슛보다는 수비력으로 처음에 이름을 알렸고, [[문경은]]이 졸업한 후에는 주포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때 연세대의 라인업은 [[이상민(농구)|이상민]]-문경은-우지원-서장훈은 풀타임 고정에 김훈이 선발로 나오고 수비가 필요할 때 중간중간 석주일이 김훈 대신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