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활란 (문단 편집) == 평가 == 김활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양분되어 있다. [[여성]] 계몽 운동 및 [[인권]] 운동에 커다란 공헌을 남겼다는 평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 및 친[[독재]] 인사라는 평가이다. '여성운동=진보, [[좌파]]'라는 인식의 명백한 반증 중 일례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활란은 초창기엔 [[리버럴 페미니즘]]에 가까웠지만 친일 행각과 [[광복]] 후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를 거치는 등 우익 행보를 보였다. 이승만계 단체 '독립촉성중앙국민회'에 가담과 반탁 운동 전개, 1948년 대한민국의 [[유엔]] 승인을 위한 사절로 [[장면]], [[조병옥]], [[김우평]], [[모윤숙]] 등과 함께 유엔에 파견, 1950년 공보처 제3대 장관, 1959년 한국아시아반공연맹 부이사장 등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전형적인 정권 지지자이자 [[우파]]의 길을 걸었다. 김활란은 한국 여성운동에서 상당한 선구자이며, [[RISS]] 등의 논문에서도 지금도 김활란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 많다. 문제는 밑의 논평과 같이 김활란의 친일 반민족 행위까지 옹호하는 경우이다. 사실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즘 단체는 바로 [[YWCA]]이다. 이들과 다른 단체들이 연합해서 만든 단체가 현재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다.[* 보수적인 성향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결성되었고, 진보적인 성향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82년 결성되었다.] YWCA는 기독교계 보수주의 페미니즘으로 성차별적인 대중문화(만화, 음악 등)에 대한 검열로 유명했다. 이는 근간인 [[개신교]]가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었기 때문이다. [* 흔히 오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초기 여성운동은 보수성향의 경우가 많았다. 주류 여성운동 단체인 [[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1980년대 남성 [[운동권]]과 손 잡고 노동권, 독재 타파 등을 위해 활동했고, 21세기에도 [[민주당계 정당]], [[정의당]] 등과 계속 연결되는 것과 대비된다.] 게다가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기독교 내부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하나님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도마복음을 정경에 추가시키려고 하며, 아예 여성을 선, 남성을 악으로 간주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었기에, 주류 기독교계에서 페미니즘을 크게 경계하고 있었고, 기독교 페미니즘에서 보수주의 페미니즘을 제외한 다른 페미니즘 사조가 사멸에 가까울 정도로 극심한 타격을 받은게 매우 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