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홍륙 (문단 편집) === 생애 초반 === 함경도 [[경흥도호부]] 출신이다.[* [[김재준]]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경흥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http://www.changgong.or.kr/index.php/003-1/?mod=document&uid=565|#]]]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고 하며, 러시아와 인접한 함경도 출신이라는 점을 살려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며 [[어부]] 생활을 하면서 [[러시아어]]를 배워 익혔다. 1886년 5월 10일, 북청군 신포진에 러시아 군함이 정박해서 [[북청도호부|북청군]] 부사 이준수가 러시아인 함장과 간단하게 대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때 러시아군과 함께 일행으로 들어와서 통역을 섰던 것으로 처음 사료에 등장한다.[* 이준수와 러시아군의 대담을 기록한 당시 사료에서는 Кин Ток Иок이라고 음차되어 나타난다. 국사편찬위원회 국역에서는 이 인물을 김홍륙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어 통역을 데리고 다시 조선 연안에 접근해야겠다고 판단한 러시아 해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홍륙을 발견해 차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볼 때 러시아어 회화 실력은 괜찮았지만, [[한문]]과 [[키릴 문자]]는 [[문맹|까막눈]]이었다고 하며, 일상회화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통역할 수준까지는 되지 못했다고 한다.[* 김홍륙과 비슷한 시대에 러시아어 통역으로 활동했던 연해주 이주민 출신 김도일이라는 사람은 니콜라이 2세의 즉위식에 민영환을 따라가서 통역을 맡았는데, 이 사람도 조선어가 서툴러서 '[[황태후]]'(당시 러시아 황태후는 [[덴마크의 다우마]])를 '''황제 에미'''라고 통역했기에 중요한 내용은 일행으로 따라갔던 [[윤치호]]가 영어를 거쳐 통역했는데, 당시 윤치호를 견제하라는 언질을 조정으로부터 받았던 민영환은 의도적으로 윤치호를 최소한으로만 회의에 합석시켰고 김도일만 통역으로 썼다. 김도일은 김홍륙의 측근이기도 했으며, 법적으로 러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있는 동안 김홍륙과 별 다를 바 없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역시 동시대에 살았던 일본의 [[존 만지로]]의 영어 실력을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회화 능력은 뛰어났지만 어린 시절 학문을 배운 적이 없어서 영어 문장을 일본어로 옮기는 것은 서툴러서, 서양의 체계적인 학문 지식을 도입하려는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업이 어부라서 항해에 관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는 현재도 시사하는 점이 큰데 취미로 외국어를 간단하게 일상회화 수준만 배우지 않는 이상, 그 나라에 대한 예절이나 역사나 문화, 정치 등을 같이 배우면 그만큼 시야도 넓어지고 지식도 늘어나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여러 강점을 얻을 수 있다. 현재도 전문 외교관이나 통역관을 양성할 때 순수 외국어만 가르치지 않고 다방면의 학문들도 같이 가르치거나 배우기도 한다.] 이 일로 조선 조정의 눈에 들었는지[* 1884년경부터 조선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 지역에 살던 이주민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 중 쓸모 있어 보이는 인원들을 관직에 등용하고 있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김홍륙은 1888년 부장, 1889년 [[수문장]]으로 임명되는 등 무관 쪽으로 벼슬을 시작한 것이 확인된다. 수문장은 신분이 확실한 [[양반]] 자제들 중에서 차출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천출이었던 김홍륙을 수문장으로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특별 대우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조선도 러시아와 통상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주변에 가까이 두면서 유사시 통역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유사시는 생각보다 빨리 김홍륙에게 찾아왔다.[* 동시대 인물 중 선교사 알렌에게 몇달 배운 서투른 영어를 무기로 벼락출세한 [[이하영]]이 있다. 덕분에 당시 조선에서 몇 안되는 제대로 된 영어 구사자였던 윤치호는 이 안하무인한 둘을 매우 경멸했다. 그나마 이하영의 영어는 미국 체류 이후 상당히 세련되게 다듬어졌지만, 당시 조선 지식층의 기본소양이던 한문은 끝내 잘 읽지 못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