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혜수 (문단 편집) === 1985년 ~ 2008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혜수15.jpg|width=100%]][br][[파일:김혜수12.jpg|width=100%]][br][[파일:김혜수14.jpg|width=100%]]}}} ||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운 유단자였는데[* 그녀가 졸업한 미동초등학교는 1980년대 태권도 명문이었으며 [[1988 서울 올림픽]] 개회식의 태권도 시범단에도 미동초등학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항간에는 김혜수가 88올림픽 개회식에 나왔다는 루머가 90년대 말까지 PC통신 등에서 떠돌기도 했다. 실제로는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 환영 행사 때의 화동으로 참여했다.] 광고 속에 나오는 태권도 장면에 어울리는 여자를 찾던 CF 감독에 의해 발탁, 1985년 16세 나이로 초콜릿 음료인 네슬레(당시 한서식품) [[마일로(음료)|마일로]][[https://youtu.be/1bXwUdr9GI4?t=40|광고]]에 태권소녀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첫 발을 들였다. 그리고 광고에 출연한 모습을 본 이황림 감독에 의해 영화 《[[깜보]]》의 주연으로 극중 [[박중훈]]의 상대역인 밤무대 가수 '나영'을 맡아 연기자로 전격 데뷔했다.[* 재미있는 건 박중훈도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감독들이 어린 나이였던 김혜수를 탐낸 이유를 알만하다. 이황림 감독은 당시 김혜수를 캐스팅하기 위해 시나리오 일부를 바꿨다고 할 정도. 보통 저 나이 또래면 성인 연기 이전에 하이틴 배역을 먼저 맡기 마련인데 김혜수의 경우 16살 나이로 데뷔하자마자 10대 연기를 넘어서 바로 성인 연기를 맡았으며 이런 예는 별로 없다.[* 이런 예는 김혜수 약 10년 후에 나온 [[김소연]]이 유명했다. 그리고 [[김희선]]이 있다. 그 이후 10대가 성인 연기를 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셋 다 키가 크고,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노안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혜수는 그나마 좀 덜 나이 들어 보이는 편이었지만 성숙한 몸매와 키로 화장을 하면 누가 봐도 어른.] 이 당시 이색 경력이 있다면 데뷔하자마자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는 것인데, 이 경력이 회자되는 이유는 한국 가요 역사상 최초의 뮤직비디오였기 때문이다. 더욱 경악할 만한 사실은 그 뮤직비디오의 노래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왕 [[조용필]]의 '[[조용필 8집|허공]]'이라는 것이다.[[http://www.youtube.com/watch?v=NC1OrPvK7us|#]]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7ZvF9ewRhE)]}}} || [[신인]] 시절 [[가수]]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1988년 그녀의 신인시절에 출연한 《[[어른들은 몰라요(1988년 영화)|어른들은 몰라요]]》[* [[이규형(영화 감독)|이규형]] 감독의 영화로 [[최양락]], [[이건주]] 등이 출연했었던 영화이다.] OST에서 <[[아름다운 세상(노래)|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곡을 불렀다. 음원은 [[벅스]], [[멜론]]에서 들을 수 있다. 《[[직장의 신]]》, 《모던보이》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깜보]]》로 데뷔한 이후 《사모곡》, 《세노야》, 《순심이》 같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다. 《세노야》에선 동시기 이미 베테랑으로 인정받던 [[이혜숙]]과 극중 자매로서 연기로 맞짱을 뜨고 갓 스물이 된 나이에 《꽃 피고 새 울면》에서 극중 상대역 [[노주현]]과 나이차가 무려 26살이나 되는데도 부부로 출연하는 등 겨우 20대 초반 나이에 당대의 출중한 연기자들과 연기하면서 그 또래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깊이 있는 연기와 더불어 청순가련함을 화면에 드러냈고[* 참고로 '꽃 피고 새 울면'은 거의 부녀 수준인 주연 배우의 나이차 문제 외에도 상당히 문제가 많은 드라마였다. 극중에서 김혜수는 노주현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게 되어 억지 결혼했으며,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시로 부부 강간이 등장하는 등 지금 사회적 기준으로는 거의 드라마 폐지 수준의 요소가 굉장히 많다.] 이를 통해 작품의 인기를 보장하는 특급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충남 청양산골이 고향인 '순심이'가 서울로 가려다 아버지([[김인문]])에게 사정없이 맞는 장면을 녹화하는 날이었다. 김혜수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운 감독님, 제가 아버지에게 진짜로 맞아야 감정도 살고 이 씬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김인문)도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 >이 씬을 녹화하는 동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맞는 순심이(김혜수)가 크게 다칠 것 같은 공포감에서 서둘러 컷을 외쳤다. 씬의 리얼리티(사실감)는 단연 최고였다. 두 배우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시절에 하도 스케줄이 많으니 김혜수 측에서는 역을 고사하려 했는데 캐스팅하는 사람들이 제발 맡아달라고 집 앞에서 진을 치고 통사정을 해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역을 맡은 적도 부지기수라고 할 정도였다. 영화 쪽에서도 마찬가지. 1991년, 20대 초반에 출연한 《잃어버린 너》 등의 영화에서 청순가련한 모습을 이어간다. 특히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1993)|첫사랑]]》에서 첫사랑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최연소 청룡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혜수 자신에게는 이런 청순가련한 이미지로의 고착이 큰 부담이었는지 이후 연기 변신을 모색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한지붕 세가족]]》에 출연, 몸매 드러나는 복장을 즐기는 젊은 미시족 역을 맡았는데 그제서야 사람들은 김혜수가 글래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김혜수의 몸매는 엄청난 화제를 불렀고 김혜수 본인도 섹시한 스타일로 이미지 변신에 완벽히 성공한다. 그녀는 위와 같이 80년대 중후반 하이틴 스타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자 텔레비전의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진행자[* 청룡영화상 및 김혜수의 플러스유 등을 진행]로도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기존 인기를 이어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MBC 일요아침드라마 '''《[[짝(MBC)|짝]]》으로 27세의 나이에 첫 연기대상을 수상'''하고 [[복수혈전(드라마)|복수혈전]], [[국희]][* 99년 당시 연말 MBC연기대상에서 당대 최고의 연기자 김혜자와 대상후보였고, 김혜수는 최우수상 및 기자단 선정 올해의 탤런트상을 수상했다.]등 높은 시청률의 인기극의 주연을 맡는 등 [[탤런트]]로서는 잘 나갔다.[* 그런데 이 해에 대상을 수상할 만한 배우가 없어서 1년간 꾸준히 인기를 유지한 짝을 책임진 김혜수를 줬다는 뒷말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91년 《잃어버린 너》[* 91년 한국영화 흥행 3위 기록] 등을 제외하곤 출연하는 [[영화]]들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건데, [[한석규]]의 [[충무로(은어)|충무로]] 진출작이자 함께 출연한 《닥터봉》이 흥행에 성공하고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비로소 흥행배우가 된다.[* 닥터봉이 흥행에 성공하고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도 수상하면서 시나리오가 제법 몰렸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김혜수의 섹시한 이미지를 노린 작품이어서 모두 다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에 전념하지 못하고 쇼프로 진행과 드라마만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출연한 영화들은 [[안재욱]]과 출연한 《[[찜(영화)|찜]]》을 제외하고[* 닥터봉과 찜의 성공요인은 바로 한석규의 코믹연기와 안재욱의 여장연기 덕분이다.] 하나같이 흥행에서 실패를 하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차승원]], [[이성재]], [[송강호]]라는 남자배우들을 돕는 여주급 조연으로 출연한 《[[신라의 달밤(영화)|신라의 달밤]]》, 《[[YMCA 야구단]]》이 흥행에서 성공하면서 비로소 본인 이름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에 출연하고 《분홍신》과 《[[얼굴 없는 미녀]]》가 작품성에서 호평받으며 영화계에서 겨우 자기 자리를 잡게 된다. 《얼굴 없는 미녀》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 이후론 섹시한 이미지가 고착되어 오히려 짐이 되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이니 젊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고정 이미지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엔 그녀도 30대의 나이에 접어들며 신세대들의 급부상의 세대교체에 따라 최진실•채시라•하희라 등의 같은 기존 30대 톱스타들처럼 자연스레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2002년 KBS가 100부작으로 기획한 [[장희빈(KBS)|장희빈]]에 출연하기 위해 영화 [[바람난 가족]] 출연을 고사하며 영화사와 갈등을 겪었고, 장희빈 내부에서도 작가 교체 등 여러가지 문제와 함께 시청률 역시 저조한 성적을 거둬 조기종영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방영기간 내내 작품의 중심을 잘 이끌어 약 1년 동안 100부작을 모두 내보낼 수 있었고, 최종회 시청률도 30%를 넘겨 유종의 미를 거둬 그해 연기대상에서 다른 인기작의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출연한 2004년 영화 《얼굴 없는 미녀》도 흥행성적은 부진했고 그해 연말부터 방영된 MBC 주말극 [[한강수타령]] 역시 KBS [[부모님 전상서]]에 밀리는 성적을 거뒀다.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타짜 김혜수.jpg|width=100%]]}}} || || '''영화 《타짜》''' || 그러다 2006년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정마담 역으로 출연한 《[[타짜(영화)|타짜]]》가 684만 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대 흥행하고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인기스타상 2관왕을 차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달리게 된다. 이 영화를 계기로 김혜수는 그 후 작품들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김혜수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역할'들을 맡아나가기 시작한다. 1994년 대한뉴스에도 뜬적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J8krjVe7RoU|#]] 0:31초부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