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식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external/image.kyobobook.co.kr/2367518.jpg]] * 김현식 2집 커버. 가수로서 정체성은 블루스, 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록밴드들의 스타일이자 주류였던 [[백두산(밴드)|백두산]], [[시나위(밴드)|시나위]] 등의 가죽바지, [[장발]] 같은 스테레오타입 록커와는 거리가 먼 보이스와 비주얼로 2집 때부터 크게 인기를 얻었다. *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굉장한 [[미성]]이었다.[* 목소리가 상당히 변한 3집 때도 '''3옥타브 레(D5)''' 까지의 고음을 깨끗하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음색을 바꾸려는 본인의 노력과, 평소에 즐겨 하던 술담배의 영향이 겹쳐 굵은 목소리 + 쇳소리가 나는 허스키한 창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무릎팍도사]] [[김건모]] 편에서도 잠시 비교용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 1집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6집 <내 사랑 내 곁에>의 음색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로 1집에서는 정말 놀라울 정도의 미성이었다. 1집의 타이틀 <봄 여름 가을 겨울>, 2집의 <사랑했어요> 등에서 나타나는 그의 보컬은 특유의 미성과 가성의 능숙한 사용으로 쭉쭉 뻗어올라가는 고음을 보여준다. 2집을 내기 전인 1984년 3월, 7인치 LP판 싱글을 낸 적이 있는데 '사나이 노래' 라는 타이틀을 냈었다. 1집과는 달리 굉장히 굵지만 허스키와는 거리가 먼 창법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다만 상업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먼 실험성이 돋보였던 앨범인지라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고가에 거래되는 음반이 되어버렸다.[* 당시 한 소주 광고로 쓰였던 곡이다.][* 이 말은 김현식을 좋아하는 팬들 중에서도 정말 깊은 팬심을 가진 분들만이 대체적으로 앨범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김현식이 다른 시기에 녹음한 같은 노래들을 비교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BJrqB9aORQ un|1집 떠나가 버렸네]], [[https://www.youtube.com/watch?v=HMOlozP_ycA|3집 떠나가 버렸네]], [[https://www.youtube.com/watch?v=gV465SQtvHU|말년의 떠나가 버렸네]] 이후 목소리가 상당히 바뀐 3집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어보면 미성이 상당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른 거칠거칠하면서도 애절한 음색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목소리가 바뀐 것은 4집 이후로[* 허스키함에 더불어 1984년 발표곡 '사나이 노래' 의 굵은 목소리 위주로 창법을 변경했다. 그러나 4집 시절에도 변덕쟁이 라이브, 우리네 인생 등은 3집 목소리로 부르지만 술과 담배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인지 허스키함이 더욱 가미되어 있다. 특히 느린 템포의 곡에 있어 목소리를 굵게 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가 크게 히트하면서 대중의 인식이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고정됐다고 할 수 있다.[* 단, 내 사랑 내 곁에의 목소리는 김현식의 몸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죽기 직전인 최악의 몸상태로 녹음을 한 노래였기에 고의적으로 허스키한 목소리를 낸 것이 아니다. 녹음된 노래에서도 곡을 다듬었음에도 음이탈이나 심하게 갈라지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몇몇 부분은 절규로 느껴질 정도의 부분도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이 본인 사후 본인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고정된 케이스는 또 있다. [[이소룡]]이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노란 트레이닝복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쪽은 이소룡의 말년의 몸상태와는 무관하게 단순히 이소룡이 맡은 배역의 콘셉트였으므로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기는 힘든 감이 있다.] * 김현식은 음악 여행을 겸하여 한때 국내 사찰들의 종소리를 들으러 다녔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소리에 대해 연구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싱어송라이터다. 봄여름가을겨울, [[사랑 사랑 사랑]], [[사랑했어요]], 추억만들기 등의 노래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다. 라이브나 녹음에서 노래 하다가 음을 바꿔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에 대해 이해가 뛰어나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라디오 스타에서 김종진이 그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그냥 자기 멋대로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당대에 한 성깔 하는 선배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미국 대중음악계로 치면 김현식과 동갑인 [[프린스(음악가)|프린스]]와 비슷해보인다. 다른 점은 김현식은 80년대 대한민국답게 주먹을 쓰는 일이 많았지만, 프린스는 말로써 굉장히 무섭게 혼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백밴드를 때려서 내쫓았던 [[제임스 브라운]]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김현식이 자신의 밴드를 내쫒지는 않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이자 리더였던 [[장기호]][* [[나는 가수다]]에서 자문위원단장으로 나온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에는 [[베이시스트]]로 활동했었다.]는 [[뮤직비디오]]를 야외에서 추운 겨울날 너무 오랫동안 찍자 김현식이 짜증을 내며 '''"야! 악기 싸!"'''라고 하면서 가려고 하자 삿대질과 잔소리에 질책하듯 말리다가 김현식에게 죽빵을 맞고 쌍코피난 적이 있다고 한다. [*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김종진]]&[[전태관]]이 이 일을 언급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IDVeUU9wyg&t=166s|그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김종진과 전태관.]] 여담으로 김종진과 전태관 본인들은 김현식에게 맞은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한때 그의 사촌동생으로 소문날 정도로 절친했던 김장훈[* 물론 당연히 둘은 사촌지간은 아니다. 이런 소문이 날 정도로 둘이 그만큼 친했다는 뜻이다.] 역시 조금이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김현식한테 굉장히 많이 맞았다고 한다. 이런 류의 얘기를 가볍게 하는 것을 보면 두들겨 맞은 수준은 아닌 것으로 실제로 정말 정도가 심했으면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만한 논란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현식이 활동하던 80년대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폭력적인 경향이 매우 강했으므로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당장 80년대의 학교는 지금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체벌이 심했다. 80년대까지 가지 않고 2000년대만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체벌이 계속 남아있었다.] 즉 당시에는 지금처럼 큰 논란이 될 행위라기보다는 조금 성깔 있는 선배 음악가 형 정도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당사자들도 웃으며 회상하듯 이야기한것이 많았고 그의 그런 폭력을 언급하기보단 그가 베푼 미담을 더 많이 덧붙여서 이야기했다. 위의 일화에 엮인 봄여름가을겨울 멤버 두 사람은 방송 내내 김현식을 칭송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어찌 됐건 당사자인 후배들 입장에선 "존경하는 선배의 괴팍한 일면" 정도로 받아들였단 의미. 또 그냥 폭력으로 갈구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이 동생들을 데려다주다가 아예 타고 다니라며 '''자동차'''를 주는 등 미담도 굉장히 많다. 위의 김종진과 전태관 뿐 아니라 수많은 가수들이 김현식이 자신들에게 베푼 미담들을 밝히고, 도움을 받았던 사례들을 얘기했다. 가수 정경화는 후배를 잘 이끌어주고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으며 비오는날의 수채화를 같이 부른 권인하는 김현식을 '''대인'''이라고 부르며 그의 베품과 후배들에 대한 사랑을 담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즉, 단순히 폭력으로 후배들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잘 대해주되 종종 혼내는 상황에서 폭력을 썼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와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 모두 그리워하고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강조하는데다 수많은 좋은 일화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80년대의 스타일을 담은 가수였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악평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알코올 중독에 폭력배였다면 그의 음악이 아무리 좋았다한들 좋은 기억만이 남지 않고 또 그가 이렇게 좋은 가수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즉 야구 감독 [[김응용]]과 비슷한 유형인 셈.[* 그 쪽도 굉장히 무서운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선수들을 아끼는 면모를 보였다. 당장 선동열과 이종범이 가수로 데뷔하자 선동열과 이종범한테는 엄청난 갈굼을 했지만 선동열과 이종범이 모르게 그들의 앨범을 10장이나 구매하였다.] * 1992년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이 개봉했지만 흥행이나 평은 그리 안 좋았다. 김형철[* [[신촌블루스]]의 객원 보컬로서 김현식과 한 무대에 자주 올랐으며 뒤에 영화 [[노랑머리#s-2]]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2007년 4월 3일 급성 간암으로 사망했다.]이 김현식을 맡았지만 이젠 잊힌 영화가 되어버렸다. * 1996년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머나먼 나라]] 초반부에서 김현식이 자주 언급되었다. 초반부는 배경이 1990년도였는데, 극중 한수([[김민종]])가 김현식의 광팬이어서 운하([[김희선]])를 데리고 김현식 콘서트에 갔고[* 김현식이 노래 부르는 장면은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2100329135004&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6-09-21&officeId=00032&pageNo=35&printNo=15889&publishType=00010|당연히 과거 영상으로 대체했다.]]], 또한 한수는 김현식이랑 악수한 손을 영광으로 여겨 붕대를 감고 다녔다. 물론 김현식이 사망한 날 꽐라가 된채 노래방에서 <언제나 그대 내 곁에>만 20번 이상 부르는 것도 모자라, 집에 돌아온 후 울면서 깽판을 부리기도 했다. 드라마 오프닝 자체가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리메이크 버전이고, 훗날 김민종도 따로 리메이크 버전을 불렀다. * 그의 아들 김완제 씨 역시 [[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우며 고집이 셌다고 한다. [[https://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80512|어릴 때를 떠올리는 김완제씨]]. * [[이승철]]이 스승으로 모시는 가수라고 한다.[* [[슈퍼스타K4]] [[에피소드]] 7에서 심사위원 이승철이 직접 언급.] 이승철이 이를 언급한 맥락에 따르면 직접 가르침을 사사한 적은 없지만 그의 노래에 큰 감명을 받고 즐겨 듣고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여기는 듯 하다. * 위에도 서술되어있다시피 [[김장훈]]과도 인연이 깊은데 김현식의 어머니와 김장훈의 어머니 두 분이 친자매처럼 친했고 이로 인해 김장훈과도 절친했었다. 오죽하면 성이 같고 둘 다 불같은 성격이라 김장훈은 김현식의 사촌동생으로 소문날 정도였었다. 이 덕분에 김장훈은 음악적인 부분에서 김현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일명 '밥퍼목사'로 유명한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와는 10대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였다고 한다.([[https://youtu.be/tCTZP7Kc3i0?t=435|관련 영상]]) 그래서 최목사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에서도 그의 친구이자 사랑의 메신저로 김현식이 등장하기도 했다.([[https://weekly.donga.com/3/all/11/96185/|기사]]) * 1989년에 데뷔한 가수 [[김상아]]도 '[[사랑했어요]]'라는 노래를 발표해 히트시킨 적이 있다. 물론 서로 관계없는 별개의 곡이며, 김현식의 곡은 1984년에 발표되었고 김상아는 1990년부터 주로 활동했기에 시간차도 크다. 다만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동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혼동하는 사람도 없진 않은 모양. [* 김상아도 전성기때에는 나름대로 인기 가수로 활동했다. '사랑했어요'를 발표한 이듬해 '꼬마청바지'를 크게 히트시켰으며, '엔젤리나', 'Yes or no' 등 중박 히트곡을 꾸준히 발표했고, 연말 가요대상 단골 초대가수였다. 1991년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현철의 바로 옆에서 먼저 축하포옹을 했던 가수도 그였다.] * 2019년 9월 그의 노래를 뮤지컬 넘버로 편곡하여 <사랑했어요>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개봉하였다. [[https://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9011763|인터파크 공연 정보]] * [[http://www.okcheoni.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9|여기]]서 죽향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볼 수 있다. 동창의 말에 따르면 김현식의 집에는 커피와 통기타 같은 신식 문물이 가득했다고 한다. * 래퍼 [[BILL STAX]]가 정규앨범 '[[DETOX]]'의 타이틀곡인 'Lonely Stoner'의 첫 마디를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사에서 인용하였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 김현식의 외할아버지는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을 한 상당한 지식인이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C%84%9C%EC%A1%B0%EC%84%A0|성서조선]]이라는 무교회주의 기독교계 잡지의 창간 멤버였다. [[http://www.okcheon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8|#]] * 부친처럼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김완제는 2010년, 김현식 20주년 앨범에서 아버지의 곡인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다. 또 [[신해철]]의 [[그대에게]]도 커버한 바가 있다. * [[히든싱어]] 원조가수 후보로 매 시즌 올라와 있고 많은 시청자들이 바라고 있지만 난항이 많다. 실제 부르는 모창자와 헷갈리게 만들 만한 디지털 소스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 김광석보다도 6년이나 사망이 빠르기 때문. 그런데 2022년 방영될 시즌 7에서 원조가수 후보로 올라왔고 시즌 7의 마지막 가수로 11월 4일에 방송된다. 그만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것이 반영된 듯 하다. * 동생 김현수는 김현식이 한창 활동할 때 미성년자의 모습이었던 걸로 보아 나이 차이가 상당하며, 생전에 많이 챙긴 아버지 같은 형이었다 밝혔다. * 2015년부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소관, [[지니뮤직]] 후원으로 매 년 김현식 가요제를 개최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유후 U-who]]가 2회 김현식 가요제에 블루글래스 명의로 참가하여 2위를 수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