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문학가) (문단 편집) == 생애 == 1942년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났다. 목포북교국민학교, 목포중학교, [[경복고등학교]]에 이어 [[1964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 자유문학에 투고한 나르시스의 시론이 평론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71년]]부터 [[1990년]] 사망시까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0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지성]]을 창간하여 이끌어 나감으로써, [[창작과비평]]과 더불어 문지-[[창비]] 양대 문예지 시대를 열었다. 이후 [[문학과지성]]은 [[창작과비평]]과 함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강제 폐간당했다가, [[1988년]] [[문학과 사회]]로 재창간된다. [[장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 프랑스 문학의 [[실존주의]]적 경향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평생 8권의 평론집을 낸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문학 평론 활동을 통하여 1990년 [[간경변]]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한국 문학 평론의 기초와 틀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특히 시인 [[김수영(시인)|김수영]] 등을 평론한 것이 유명하다. 그의 시를 범법이라고 하면서도 그만큼 대담하다며 그의 시를 바탕으로 자신 스스로를 설득하는 변증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즉 평론으로 자기확인을 한 명문인 것이다. 불문학 연구자임에도 한국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연구와 비평을 병행한 걸출한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로 꼽힌다. 생전에 [[최인훈]], [[이청준]], [[김승옥]], [[김지하]], [[고은(시인)|고은]],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시인 최하림(1939 ~ 2010.04), [[김원일]], [[서정인]] 등 수많은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그들의 작품을 비평했다. 또한 문충성, [[김광규(시인)|김광규]], [[윤후명]], [[복거일]][* 시인이었던 [[복거일]]을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을 거치지 않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 [[비명을 찾아서]]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시켰다.], [[이성복]], [[황지우]], [[이인성(소설가)|이인성]], [[최승자]], [[김혜순]], 최두석, [[최수철]], [[조세희]], [[임철우]], [[김명인]], 박남철, [[기형도]], [[김기택]] 등 다양한 신인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생전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과 함께 쓴 공저 <한국문학사>([[민음사]])는 한국 근대의 시작점을 영조와 정조의 제위기간으로 잡은, 거의 최초의 서적이다. 사후에 발간된 산문집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지성사]])도 또한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외에도 다수의 연구서와 비평집을 냈으며, 모든 저서는 그의 사후 <김현문학전집>이라는 이름 하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전부 정리, 간행되었다. 2015년 설립된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에서 그의 이름과 문학을 기리는 <김현문학패>[* 다른 문학상과 다르게 문학패라는 독특한 이름을 택했다.]를 제정, 현재까지 시행해오고 있다. [[http://silhum.or.kr/kim-hyeon-prize/#pg-295-1|홈페이지]][* 매년 시, 소설 부문에서 한 명씩 수여한다.] [[박화성]], [[김우진]], 차범석과 함께 목포문학관에서 전시중인 4명의 문학인 중 1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