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한민 (문단 편집) == 생애 == 1969년 9월 26일에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1995년에 졸업했고, 한동안 영화사에서 근무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99년에 첫 작품인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를 연출했다. 2007년에는 상업 영화 첫 작품인 <[[극락도 살인사건]]>을 만들어 전국 226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했고 2009년 <[[핸드폰(영화)|핸드폰]]>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전국 관객 63만으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2011년 <[[최종병기 활]]>이 전국 747만이 넘는 대박을 거두면서 이름을 크게 알리게 된다. 그리고 [[2014년]]에 <[[명량]]>을 연출하여 무려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상종가를 올렸다. 제작사가 그가 출자한 회사라 그가 최대 주주인데 수익 가운데 120억이 그의 몫이라고 한다. [[https://movie.v.daum.net/v/20140830154905609|관련 기사]] 제작자가 연출까지 맡은 케이스라 대박이 터진 것. [[2015년]] 당시 차기작으로 [[봉오동 전투]]를 그릴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5022716400757157&type=1&outlink=1|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봉오동 전투(영화)|영화 봉오동 전투]]가 [[2019년]]에 개봉했다. [[원신연]] 감독이 연출했으며, 김한민은 제작에 참여했다. [[2022년]] 7월엔 [[한산: 용의 출현]]이 개봉하였다. 이전작인 [[명량]]에서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을 인지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한산의 개봉 이후 다음 작품인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끝내면 칠년전쟁이라는 가제 아래 이순신을 주역으로 삼은 드라마를 제작할 것을 시사했다. 또한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봉오동 전투 - [[권기옥]] - [[청산리 전투]]로 이어지는 대일항쟁기 3부작 프로젝트 제작에 나설 것을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