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평호 (문단 편집) === [[삼성 라이온즈]] 1기 시절 === [[2003년]] 시즌 후 [[김인식]] 감독이 물러나고, 그 뒤를 이어 [[김경문]] 배터리코치가 [[두산 베어스]]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자[* 이 때 1군 코칭스태프들이 대규모로 바뀌었는데, 김인식 감독의 최측근이던 [[유지훤]] 수석코치가 같이 용퇴했다. [[송재박]] 타격코치는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양승호]] 수비코치가 새 수석코치로 발탁되었다. 한편 김평호 주루코치는 [[삼성 라이온즈|삼성]], [[최일언]] 투수코치는 [[한화 이글스|한화]]로 팀을 옮겼고 김경문이 감독이 되면서 공석이 된 배터리코치 자리는 당시 2군 코치이자 훗날 [[두산 베어스|두산]]의 감독이 되는 [[김태형(1967)|김태형]]이 맡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3년 뒤인 [[2016년]] 말에는 김평호 코치가 [[NC 다이노스|NC]] 감독 [[김경문]]의 부름을 받고 그를 보좌할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긴다.], [[2004년]] 한 해는 잠시 야인으로 있다가 [[2005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삼성 감독이던 [[선동열]]의 사단으로 활약하면서 주루코치를 역임하였다. 삼성 코치 시절에는 선수들과의 친화력이 대단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며 전력분석의 노하우까지 겸비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도 선동열 사단인 [[정회열]] 배터리코치와 함께 삼성에 잔류했으며 [[2011년 한국시리즈]]에 주루코치로 재임하면서 우승반지를 다시 한 번 꼈다.[* [[2011년]]은 [[선동열]] - [[류중일]] 시기의 과도기 성격이 강했다. 이후 [[2012년]]에 선동열 사단 코치들이 [[기아 타이거즈|KIA]]로 이동하고, [[장효조]] 2군 감독 별세에 따라 [[장태수]] 수석코치가 2군 감독으로 이동한 이후에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위주로 조각된 코치진들은 류중일 감독 계약 만료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여담으로 선동열이 삼성 감독 시절 여러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삼성 팬들에게 평가가 안 좋았을 때도 삼성에 있었던 선동열 사단 코치들 중 유일하게 평가가 좋았다. 이 시기 가장 유명했던 건 [[레전설]]로 평가받는 [[정인욱]], [[김상수(타자)|김상수]] 하이데어 사건. [[2011년]] [[8월 6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에게 지고도 정신 못 차린 정인욱과 김상수가 하이데어로 희희낙낙거리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러]]들에게 딱 걸렸고, 분노한 삼갤러들은 [[트위터]]를 통해 김평호 코치에게 분노의 트윗을 날렸다. 그러자 이 트윗을 본 김평호 코치가 김상수, 정인욱을 포함한 선수단 전원에게 하이데어를 탈퇴하도록 만들었다. [[http://blog.naver.com/gkekgus123/110181421204|당시 김평호 코치가 남겼던 트윗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