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택용 (문단 편집) === [[3.3 혁명]] === [[곰TV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본좌 라인([[임요환]], [[최연성]], [[이윤열]])을 상대로 24:5라는 믿을 수 없는 스코어를 자랑하며 시즌 [[저프전]] 21승 3패 승률 87.5%를 자랑했던 --[[마재윤]]--. 이 당시 --[[마재윤]]--은 저그 최초로 양대 개인 리그 동시 결승 진출을 이룩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던 스타판 [[본좌#s-3]]였다. [[리버스 템플]], [[롱기누스(스타크래프트)|롱기누스]]와 같은 초유의 테란 맵에서조차 내로라하는 테란들을 다 때려 잡으며 양대 결승에 진출했고, 프로토스전은 당대 최강의 프로토스라는 [[강민]], [[박정석]], [[박용욱]], [[전태규]]와의 상대 전적만 보더라도 두 말이 필요 없었을 정도(vs 강민 18승 8패, vs 박정석 14승 3패 vs 박용욱 4승 0패 vs 전태규 3승 1패로 합계 '''39승 12패'''). 결국 계속되는 테란과의 처절한 전쟁에서 희대의 테란맵들을 뚫고 결국 테란의 마지막 남은 본좌 [[이윤열]]을 대파하며 [[본좌#s-3]]에 즉위했다. 당시 --[[마재윤]]--이 결승을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때 김택용은 [[푸켓]]으로 관광을 가서 놀다 왔기 때문에 '''푸켓몬 마스터'''라는 별명이 붙여졌다(물론 [[MBC GAME HERO|MBC 게임 히어로]] 팀 차원에서 휴식차 간 것). 또 인터뷰에서 '센 발언'을 바란다는 부탁에 "3:0 안 당하게 연습하셨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여러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 조롱을 받았다. "어차피 질 거 주둥이라도 놀리겠다는 거냐", "마XX 상대로 듣보 주제에 깝치고 있네"라는 식으로. 이 별명과 관련해서도 짤방이 존재한다. [[http://s10.postimg.org/xkkwhwo61/2049140176_c7684fe3_131313.jpg|푸켓몬스터]] 그러나 테란과의 전쟁에서 지친 --[[마재윤]]--이 [[MSL]] 결승에서 치밀한 빌드 싸움보다는 장점인 후반 운영으로 나설 것이라는 걸 정확히 간파한 김택용은 코치계의 전설 [[박용운]] 코치와 완벽한 호흡을 맞추며 그의 아이디 그대로 마재윤의 숨통에 '비수'를 꽂아 넣는 데 성공한다. 결승전 리플레이 저장 에러, 김택용 특유의 압박 스타일, [[박용운]] 코치의 빌드 조립과 개념의 변화, --[[마재윤]]--의 무뎌진 플토전 감각,[*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 김택용이야말로 3개월 만에 한 저그전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3개월 동안 테란전만 해서 이제 저그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 [[심소명]]과 [[박성준(1986)|박성준]][* 심소명식 [[땡히드라]]는 혁명 이후 김택용이 어려워했다고 알려졌으며, 실제 혁명 전 연습 5전제에서 3-2로 겨우겨우 김택용이 이겼다고 한다. 박성준의 경우는 말이 필요없는 다전제 토스전 킬러. 다만 마모씨와 박성준의 플레이 스타일은 차이가 컸다.] 등으로 인해 예상 승률 2.69%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물론 --[[마재윤]]--이 지친 것과는 별개로 워낙 기량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기도 했다. 단순하게 당시의 --[[마재윤]]--과 김택용의 상대 전적만 보더라도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존재했다. 재미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본좌#s-3]]였던 --[[마재윤]]--을 상대로 신예 김택용이 '기량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더욱 무서운 것은 --[[마재윤]]--은 이날의 패배 이후 2007년 프로토스전 '''20승 5패'''를 기록했다는 것. 진짜로 [[강민]]에게 [[백두대간(스타크래프트)|신 백두대간]]에서 캐논 러시 당해서 진 것 정도를 제외하면 다 이겼다. 프로리그에서 최강의 포스를 뿜어내던 [[송병구]]조차도 토스 맵 [[데스페라도(스타크래프트)|데스페라도]]에서 케이블 카 관광을 보내 버렸으며 [[허영무]]도 연달아 2번 털어버렸다. 곰TV MSL 시즌 3에서도 16강에서 또 [[송병구]], 8강에서 [[윤용태]]를 무자비하게 발라버리고 4강에 진출했을 정도. 송병구와 윤용태 둘에게는 세부 세트로만 1세트씩 졌을 뿐이었고 결국 이겼다. 나머지 2패는 EVER 스타리그 2007 8강에서 김택용에게 당한 대역전패. 3.3혁명을 포함한 마XX의 2007년 공식 프로토스전 전적이 20승 8패인데 그중 5패를 김택용 1명에게 당했다.[* 이는 곧 마XX가 다른 토스들은 압살했지만 결국 김택용은 넘지 못했다는 소리. 마재윤 MSL 토스전 세부전적을 보면 경악 할 수준인데 40승 12패 중 4패가 김택용 7패가 다전제 패배고 결국 3:1 혹은 2:1로 다 이겼다. 김택용을 제외하면 단판 패배는 김구현에게 진 1패가 유일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염보성 말대로 김택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재윤이 10회 우승을 했을거란 소리도 현실성이 전혀 없진 않다. 실제 마재윤이 밝히길 유일하게 실력차이를 느낀 게이머가 김택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김택용은 당시의 [[본좌#s-3]]를 꺾고 우승, 당시 '''최연소 우승과 MSL [[로얄로더]]'''를 이룩하며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프로토스 유저인 [[박정석]], [[강민]], [[오영종]]이 [[아둔의 성지#s-1]]를 찾기 위해 [[푸껫]]으로 갔다는 괴소문도 돌았고 혹은 [[정신과 시간의 방]]이 푸껫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푸껫엔 사원(템플)이 존재한다. --[[마재윤]]--에게 3:0 승리를 거둔 [[3.3 혁명]]은 e스포츠 역사에서 참으로 거대한 충격이라 할 수 있다. 4강전 대 강민전도 이기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김택용은 당시 프로토스전 2승 5패로 제일 약했다.), 결승전 대 마XX전은 이것보다 더욱 더 충격적인 사건이라 김택용이 단 한 세트라도 따낼 거라고 생각한 사람조차 드물었다. 그러나 현실은 3:0 완승. 당시의 충격적인 [[3.3 혁명]]의 경기는 [[https://www.youtube.com/watch?v=HQSsLLLu4Wo|1경기]], [[https://www.youtube.com/watch?v=Icoec3eMQh0&t=1381s|2경기]], [[https://www.youtube.com/watch?v=QY6R57PnxsU|3경기]]에 가면 볼 수 있다. 첫 번째 플레이어에 보면 070303 vs 마XX 1, 2, 3 이게 그 유명한 3.3 혁명 경기. 지금 봐도 완벽한 명경기이며 특히 2세트에서 스톰으로 한 번에 러커를 날려 버린 것과 3세트의 4다크는 보는 사람이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 이 [[3.3 혁명]]과 관련해서 역성지가 참으로 많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스갤뿐만 아니라 PGR에서조차 당시 약간 김택용을 무시하는 듯하면서 당연히 --[[마재윤]]--이 우승할 것이라는 주장이 팽배했었다. 그런 정도니 다른 커뮤니티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요 역성지로는 결승전 전 김택용이 '마재윤도 저그일 뿐'이라고 인터뷰한 기사와 그 댓글이다. [[https://web.archive.org/web/20131102125840/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control=view&board=news_esports&c_no=2&b_no=16531|보러 가기(아카이브)]]. 관람 포인트는 3월 3일 5시와 6시 사이의 [[대격변]]급 분위기 변화. 지금 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역성지들이긴 하지만 그만큼 --[[마재윤]]--이 압도적인 플레이어였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브라질]]과 [[일본]]이 축구를 5판 3선승제로 붙는다면 당신은 어디에 돈을 걸겠는가와 같다. 이러한 업적을 이룩한 김택용에게 붙여진 별명이 바로 '''기적의 혁명가'''이다. 그의 혁명가라는 별명 자체가 품격 있고 포스가 좔좔 흐르는 별명이기도 하고, 김택용이라는 선수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별명이기도 해서 그의 아이디 '''비수'''와 함께 투 톱을 이루는 별명이다. 훗날 [[마주작|마XX]]가 승부조작으로 e스포츠판에서 퇴출되면서 3.3 혁명이 마XX를 참교육했다고 재평가된 건 덤이다. 애석하게도 반대로 본다면 승부조작 때문에 3.3 혁명이 [[져주기 게임]]을 했다고 의심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김택용의 코인게이트 연루로 인하여 이제는 그저 '''둘 다 똑같은 놈.'''이라고 불리며 혁명가라는 별명은 이제 아프리카 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 대신 '''코인용'''같은 멸칭으로 불리게 되면서 그 마재윤과 동일시 되며 스스로 이룬 업적을 무너뜨리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