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태환(농구) (문단 편집) === 지도자 시절 === 집안 형편이 너무 좋지 않던 상황에서 대학은 사치였고, 결국 김태환이 선택한 것은 국민학교 농구부 코치. 1970년에 홀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위해 화계국민학교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특히 화계국교 코치 시절에는 1980년대 코오롱 여자농구단 삼총사 중 하나인 우은경을 길러냈다.] 이후 삼양국교, 수유국교 등을 거치며 6년을 코치로 뛰다가 무학여중 코치 자리를 얻었는데, 연습경기를 실패하자 당시 교장이 "쓸 만 하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니 별 수 없군." 하고 나갔다. 이 때 학벌도, 연줄도, 신체적 강점도 없는 자신의 현실을 절감하고 승리를 위해 죽도록 노력했다. 결과는? 무학여중은 1976년 모든 대회를 전승 우승을 했다. 중학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그를 여자고등학교 농구부들이 그냥 두지 않았고, 1980년에는 선일여고 코치로 부임해서 또 다시 전승을 했다. 그리고 한 때, 생계를 위해 1983년에는 [[바레인]]으로 건너가서 농구 코치를 하며 돈을 벌었다.[* 잠시동안 호구지책으로 당구장을 경영하며 남자농구 심판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5년에 진성호 코치가 떠난 국민은행 여자 농구단의 코치로 임명되어 드디어 메이저 무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임영보(1978~1987 재임)-진가일 감독(1987~1989 재임) 곁을 거치며 코치로 훈련을 담당하면서 선수들을 조련하다가 결국 1989년, 국민은행 감독에 임명되었다. 국민은행 감독으로서 이강희 등을 중심으로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과 체력을 강조하는 농구를 선보이며, 당시 최강이던 삼성생명의 아성을 두 차례 무너뜨리며, 1991년과 1994년 [[농구대잔치]] 우승에 성공했다. 스카우트 싸움에서 밀리던 은행권 팀이 차지한 우승이라서 더 의미 부여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이 때 이후로, 김태환은 젊은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국민은행 감독 막판인 1996년에 심판 판정 문제를 둘러싸고, 심판의 경기 조종설을 제기하다가 징계를 먹기도 했고, 어차피 여자농구계에서 이룰 것은 다 이뤘기 때문에 미련도 남지 않았던 상황, IMF로 인한 여자농구계의 붕괴 속에서 결국 여자농구를 떠나게 된다. 마침 새로운 수장과 함께 재 도약을 노리던 [[중앙대학교]]에서 그를 스카우트했고, 그렇게 전무후무한 고졸 출신 대학 지도자가 등장했다. [[송영진(농구)|송영진]], [[김주성(농구)|김주성]], [[황진원]] 등을 스카우트하며, 중앙대를 일약 공격 농구를 구사하는 대학 무대의 최강자로 변신시키며, 중앙대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98년에 스카우트 관련해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재판 끝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어떤 기록에는 결국 무혐의 처분이 되었다고 한다.] 중앙대 감독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앙대 감독에서 얻은 명성을 통해 마침 [[이충희]] 감독 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고 했던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그를 불렀고, 그렇게 프로 감독이 되었다. [[창원 LG 세이커스|창원 LG]]에서 보여준 농구는 한 마디로 공격 농구의 끝. 프로농구 역사상 최초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풍전|평균 득점 100점]]의 무시무시한 [[런앤건]]'''을 구사하며 창원 LG를 그야말로 극단적인 공격 농구의 끝으로 보여줬다. 전임인 [[이충희]] 감독이 극단적인 수비 농구를 구사한 것과 완전히 정반대의 농구. 화끈한 공격 농구를 구사하며 부임 첫 해인 2000-01 시즌에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아깝게 지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만, 창원 LG를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다. PG 오성식의 리딩을 통해 조성원, 에릭 이버츠, 조우현, 이정래등 정신없이 장사정포를 날려대는 통에 전해 우승팀인 최인선 감독과 서장훈의 SK나이츠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2001-02 시즌은 잠시 쉬어갔지만, 2002-03 시즌 트레이드로 팀을 갈아 엎고, 전력을 재정비해서 또 다시 공격 농구 돌풍을 일으키며 38승 거두며 구단 최고의 성적을 냈다. 시즌 1위인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와는 상대전적에서 밀려 2위. 그러나 이 2위가 하필이면, 상성상 극악이던 [[원주 동부 프로미|원주 TG삼보 엑서스]]를 만나 2승 3패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거의 다 잡았던 5차전에서 [[데이비드 잭슨]]의 미친 쇼에 밀려 떨어진 것.[* 5차전을 이겼다면 KBL 최초의 리버스 스윕이 될수 있었다. 2021년 현재 KBL에서 2연패뒤 3연승을 한팀은 아직 없다.]그 뒤로 공격 농구의 동력을 잃으며, 결국 LG 프런트 눈밖에 나면서 재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쓸쓸히 물러나게 되었다. 잠시 야인으로 지내다가 1년뒤 2005년 [[서울 SK 나이츠]]의 4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LG 시절에 이어 다시한번 SK의 공격농구를 예고했다. 이미 판을 갈아엎는걸로 유명한데 동갑내기 명장이었던 [[최인선]]의 시련사를 의식해서인지 후임이자 자신의 전임이었던 [[이상윤(농구인)|이상윤]]도 트레이드를 했으나 곱배기로 하게 된다. [[이상윤(농구인)|이상윤]] 시절의 [[임재현(농구)|임재현]], [[황진원]], [[조상현]], [[전희철]]에서 무려 베스트만 절반을 바꾸게 된다.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와 05-06 시즌 3대3 트레이드로 [[조상현]]을 보내는 대신 1 순위의 ~~[[방성윤]]~~을 영입했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서 당시 신인이었던 [[김일두(농구)|김일두]]를 대신해서 트레이드로 [[문경은]]을 영입하며 일명 MB포 라인으로 과거 LG 시절 조-조 쌍포의 다시한번 보여줄 기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선수를 갈아엎었으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옹고집을 그냥두지 않았다. 감독으로 또 다시 공격 농구를 추구하며 공세를 벌였지만, 2005-06 시즌 후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 테크를 타며 9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2006-07 시즌 초반에도 3승 6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결국 두 시즌 만에 중도 사퇴형식으로 경질의 비극을 당하게 된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 재임 시절에도 [[창원 LG 세이커스]] 시절처럼 잦은 트레이드로 인해 조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결국 SK 프런트 눈에 성적부진과 함께 쓸쓸히 퇴진하는 아픔을 다시 겪게 된다. ~~[[방성윤]]~~과 [[문경은]]을 통해 스타급 슈터 2명을 보유하면서 KBL의 레알 마드리드를 만들었지만 끝내 외국인 문제와 모래알 조직력을 해결하지 못했다. 포인트 가드에서 이상윤 감독 시절부터 임재현을 중용했지만 사실 스타군단인 SK에서 문방포의 위력을 극대화하지 못했고 LG 시절만 보아도 포인트 가드에 대한 활용에서 당시 조조 쌍포만 고집한 댓가가 나온 것이다. 같은 런앤건 스타일인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이 후임으로 부임하면서 6강 플레이오프에 올린 걸 보면 신뢰라는 면만 볼 때 [[최인선]] 감독이 해낸 걸 보면 아쉬움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이상윤(농구인)|이상윤]] 시절부터 자리를 지켰던 [[강양택]] 수석코치는 06-07 시즌 감독대행을 거치면서 예상외로 팀을 지키게 된다. 참고로 [[이상윤(농구인)|이상윤]]과 [[김진(농구인)|김진]] 그리고 [[강양택]]은 모두 실업 삼성전자 출신으로 같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선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편이다. 1년뒤 SK는 KBL 대표명장인 [[김진(농구인)|김진]] 감독과 함께 07-08 시즌 무려 6년만에 봄농구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김태환 시절부터 이어진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2009-2010 시즌 중 [[강양택]] 수석코치와 함께 연말에 자진사퇴를 하게 된다. 이후 자신이 맡았던 [[창원 LG 세이커스]]는 [[김진(농구인)|김진]] 감독과 [[강양택]] 수석코치가 부임하면서 13-14 시즌에는 LG에서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결과론으로 같은 런앤건이지만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에 패배한 감독이다. 다만, 스타일리시한 공격 농구에 열광하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그의 농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