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지하 (문단 편집) === 생명사상 === 김지하는 70년대 후반 5년여 동안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생명사상'을 깨우쳤다고 한다. 재판이 끝나고 책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김지하는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댔다고 한다. 선불교, 동학, 생태학 등의 책을 섭렵했는데, 인간과 삶의 진화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생태학에서 시작했으나 더 깊은 내면적 지식과 무의식적 지혜를 갈구하게 되었고 그때 접한 것이 선불교 사상이었다. 원래 그의 종교는 [[천주교]]였는데, 옥중에서 선불교에 크게 경도되었다. 아울러 [[동학]]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김지하는 선불교 관련 경전들을 읽으며 영적인 깨달음을 얻어 갔다. 그리고 감옥에서 꽃과 풀을 보며 깨달음을 이어갔다. 저런 미물들도 생명이며 '무소부재(無所不在)'라 못 가는 곳 없고 없는 데가 없으며 봄이 되어서는 자라고 꽃까지 피우는데, 하물며 고등 생명인 인간의 생명은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00000000570/3/70000000000570/20130806/56859652/1#csidx59633b1d1e9d743ad0e0de17ebb18f9|#]] 여기에 [[민족주의]]와 반전주의가 더해졌다. 출감 이후 김지하는 장모인 [[박경리]] 선생의 도움으로 [[원주시|원주]]에 거주하게 된다. 이후 80년대에 걸쳐 김지하는 여러 종교의 생명 존중 사상을 혼합하여 수용하고 생명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출소 이후 그는 천주교, 선불교, [[원불교]], [[도교]] 등 생명 존중과 관련된 각종 종교들을 섭렵해 갔다. 그의 관심은 [[증산도]]와 [[환단고기]] 등에까지 미쳤다.[* 이런 면모는 1984년 간행되어 1999년 출판된 사상기행에 매우 자세히 나와있다. 그리고 장모 [[박경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토지(소설)|토지]]〉 4부부터 등장한 해도사라는 인물이 [[강증산]]을 언급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좋다 나쁘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사실상 [[사이비 종교]]로 여겨지고 있는 [[단월드]]의 창시자 이승헌을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러나 1999년에 이승헌의 내부비리를 접한 후 탈퇴하여 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과 환경운동가 최열, 강대인 당시 크리스챤아카데미 부원장, [[박원순]] 당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과 함께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을 창설해 단월드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는 생명사상과 관련된 여러 종교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했는데 이것이 개별 종교들이 오히려 김지하를 못마땅해하고 그를 배척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그가 보수적 성향을 보이자 진보 진영도 그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이후 진보 진영과 적대 관계를 이루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