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준엽 (문단 편집) == 기타 == 그의 타계 당시 [[고려대학교]]에서는 학교장을 치르지 않았다. 이를 두고 '김준엽과 이사회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랬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고인이 별세하기 약 반년 전, 2010년 11월에 김준엽 구순 기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의 봉정식이 있었을 때 고려대의 전현직 총장을 비롯, 사학과, 한국사학과 등의 각계 교수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당시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김준엽 선생의 사학과 제자였던 [[김정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2년 6월 고려대에서는 김준엽 전 총장 서거 1주기를 기리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23년 8월 25일부터, 약 1주일 동안 고려대에서 [[https://www.korea.edu/user/boardList.do?command=view&page=1&boardId=485324&boardSeq=496071&id=university_060701000000|여러 기념 행사가 열렸다.]] 그의 고려대 총장 재임 시절 재학생이었던 이진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장, [[김영춘(정치인)|김영춘]] 전 국회의원 등이 기념 사업을 주도한다. 생전에 [[장준하]]의 생애 관련으로 인터뷰를 많이 받았는데 그는 "나도 중국 땅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했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내가 뭘 했는지 물어보지 않고 장준하만 물어보더라" 라고 서운해하기도 했다. 선생은 초년기에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였지만, 광복 이후 현실 문제에 참여하기 보다는 학자 본연의 길에 충실했다. 그래서인지 생전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래도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386 운동권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전두환]]에게 맞서면서 본인들을 보호해준 정의로운 [[고려대]] 총장으로서의 이미지'''로 유명하긴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의 수립, 발전을 위해 일생을 교육에 투신하여 역사에 남는 길을 선택했고, 이러한 점이 인정받으면서 정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자 스승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명이인]]으로 [[K리그]]에서 뛰고있는 [[김준엽(축구선수)|김준엽]] 선수가 있는데 그의 부친이 김준엽 선생의 일대기를 읽고 깊이 감명 받아 아들의 이름을 똑같이 지었다고 한다. [* 참고로 동생의 이름은 [[장준하]] 선생에게서 따와 준하라고 지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강장자]] 역을 맡았던 배우 [[김성옥]]이 이 사람의 [[고려대학교]] [[사학과]] 평교수시절 가르쳤던 제자였다고 한다. 김준엽 본인도 회고록 <장정>에 [[손숙]], [[김성옥]] 부부와의 두터운 친분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기도 했다. 본인의 회고록 <장정>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절친 최기일의 회고록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에 따르면 김준엽은 굉장한 [[할리우드]]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최기일은 김준엽과 같이 신의주고등보통학교와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같이 수학한 사이인데다가 신의주고보시절에 삼총사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웠던 절친이라 학창시절의 김준엽의 면모에 대해 자세히 증언했는데, 김준엽은 교칙도 거의 어기지 않는 모범생이었지만 영화를 볼 때만큼은 교칙을 어겨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변장하고 극장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관점에서 봤을 때 학생이 극장에 가는 걸 문제삼는게 이상하지만 불과 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고등학생이 극장과 다방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학생들이 가는지 그 주변에서 교사들이 사복경찰처럼 감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리우드]] 영화광이었던만큼 미국 영화 잡지도 자주 사서 읽었으며, 미국의 압도적인 영화제작 기술력에 대해 감탄하면서 [[태평양 전쟁]] 당시 [[대본영]]에서 연일 [[대본영발표|자기들이 연전연승하고 있다는 거짓선전을 계속하던 때에도]]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경험에 입각해서 일본은 미국이랑 붙으면 국력의 차이때문에 분명히 질 거라고 자주 예측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