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준석(기자) (문단 편집) == 활동 == 경기도 [[고양시]] 출신으로 [[보성고등학교(서울)|서울 보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다. 1978년 [[기독교방송|CBS]]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로 이직하였고 이후 기자로 전직한다. 취재기자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앵커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봄 KBS의 아침뉴스인 의 외신코너를 원고 없이 3~4분간 했는데 이를 눈여겨 본 윗선의 지시로 그 다음날부터 정식 보조앵커로 나섰다고 한다. 당시 윗선의 부름에 그는 "내가 무슨 밉보일 말을 했나" 싶었는데 다음날부터 외신담당 보조앵커를 맡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해 가을부터는 정식 앵커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KBS에서의 29년 기자생활 중 20년을 앵커로서 살아왔다. 앵커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를 아나운서로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아예 취재기자 활동을 안한 것은 아니고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 그가 리포트 하는 영상을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1994년에는 남북의 창 PD를 맡기도 했고[* 이는 아래 문단에 서술되어 있는 [[김일성]] 사망 특종과도 관련이 있다.] 1995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회 때 다른 KBS 보도국 간부들과 함께 질문자로 나서기도 했다. 앵커로 활동하면서 아쉬움이 없던 것은 아닌데 KBS의 웬만한 뉴스를 다 진행했으나 아침/심야방송 전문 앵커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정작 메인뉴스인 [[KBS 뉴스 9]]과는 인연이 없었다.[* 비슷한 커리어를 쌓은 [[황상무]] 앵커가 결국 뉴스 9까지 찍고 나갔던 것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그나마도 1991년 일요일에 을 잠깐 진행한것과 1997년 7월 류근찬 앵커의 눈병으로 하루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하지만 그러나 그는 "훌륭한 선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2009년 정년퇴직을 하고 이후에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타 케이블 방송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뉴스해설가로 KBS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브리핑 코너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