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준(고려) (문단 편집) === [[무신정권]]의 집권자 === 4월에 최의가 백성을 구휼치 아니했다고 하여 곡식을 내려 백성들을 위로하고 인망으로 위로하여 [[고종(고려)|고종]](제23대)에게 청언하자 [[대장군]]이 되어 '위사공신'호(衛社功臣號)를 하사받았으며 우부승선이 되었다. 최의가 죽자 불만을 품은 권시, 권수균, 문황, 문광단, 문영단, 대정 최주, 녹사 유종식, 녹사 이수지, 교위 현군수 등이 7월에 김준을 죽이려고 모의했는데 그들의 설득을 받던 김인문을 통해 사실을 전해받은 지유 백영정의 밀고로 알게되자 유종식을 체포했으나 그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또다시 문황 등이 김준을 죽이려고 일을 꾸미다가 유종식이 체포되어 국문된 사실을 알아챈 현군수가 이를 고하여 알게 되자 문황, 최주, 문광단, 문영단, 이수지를 죽이면서 권수균 부자와 유종식을 유배시켰으며, 문황, 이수균의 가산을 김인문과 현군수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들에게 점을 쳐 준 맹승 백량을 바다에 던져 죽이고 집을 몰살시켰다. 아내의 삼촌이 되는 환자 김인선이 고종의 총애를 받자 그를 참직에 임명할 것을 힘써 청하여 고종이 이를 제수하고자 했으나 후환이 될까 두려워하며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준이 정권을 잡은지 1개월만에 [[몽골 제국군]]은 [[자랄타이]]를 총사령관으로 앞세워 제9차 침입을 개시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몽골군에 대한 항전은 [[여몽전쟁/무신정권 비판|이전 최씨 정권의 방법을 그대로 계승]]했다. '''1259년 3월 고려는 여러 차례 몽골군과의 전투 끝에 몽골과 강화를 맺게 되어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1260년 고려의 제24대 국왕으로 [[원종(고려)|원종]]이 정식으로 즉위하자 '[[중추원|추밀원]] 부사 [[어사대부]] 주국 태자빈객 익양군 개국백 [[식읍]] 1,000호, 식실봉 100호'를 받았으나, [[몽골 제국]]의 명령을 거절하는 등 [[대몽 항쟁]]의 뜻을 보였는데 [[강화도]]를 떠나 [[제주도]]로 천도하기 위해 나득황을 파견해 조사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삼별초의 난]]보다 10년 앞선 일이었다. 1261년 몽골이 원종을 불러 입조하게 하자 왕을 위하여 백고좌를 대관전에 열어 《인왕경》을 강론하니 왕이 그에게 '종자'의 작위를 하사하고, [[교정별감]][* 국가의 정책과 국정을 아울러서 통치하는 [[무신정권]] 최고 기구인 [[교정도감]] 수장.]이 되어 국가의 비위를 규찰하게 했다. 1263년 '수태위 참지정사 판어사대사 태자소사'가 되었으며, 이 해에 원종이 몽골에 행차하자 이를 감국하면서 왕이 머무는 집을 호위하고, 왕이 환국하자 후(侯)로 봉해지고 부(府)가 세워졌다. 하지만 김준은 정권을 잡고 나서 임금인 원종을 대놓고 무시하며 전횡을 일삼기 시작했다. 1265년 [[시중]]이 되고 해양후가 되었는데 [[충청도]] 안찰사인 변보에게 활 쏘는 사람을 모집할 것을 부탁했으나 그가 듣지 않자 왕께 아뢰어 그를 유배시키고 야별초 지유, 김혁정 등이 대신하게 했다. 4품 이상의 은을 차등있게 내게 하여 국고에 채우고, 부유한 백성의 금은을 사게 하면서 법이 가혹하여 백성들이 근심하고 이를 원망하였다. [[불교]] [[팔관회]]의 풍악을 아뢰는 날에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는데 백성의 괴로움이 심한지라 이를 정지했다. 자신의 가신인 고이와 별감 문성주가 의탁하면서 백성을 박탈하여 어떤 이가 익명서를 어사대에 붙여 이를 호소했지만 그만두고 묻지 않았다. 1268년 3월 몽골의 황제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이 사신을 보내어 김준과 그의 아들, 동생을 오게 하자 장군 차송우의 말을 듣고 사신을 죽이자고 원종에게 아뢰었으나 원종이 반대하며 이를 듣지 않았다. 이런 행태에 온건적인 노선을 취하는 원종은 그를 매우 싫어했으며 김준은 몽골이 입조하지 않은 것을 책망할까 두려워하여 부처님께 공양했는데 11월에 용산 별감 이석이 선물을 두 배로 싣고 강에 정박하자 이를 빼앗아 야별초에게 나눠주자 원종이 이를 알게 되면서 원종은 그를 더욱 미워했다. 게다가 김준은 12월에 국자 학유인 홍유서가 몽골의 사신으로 동반하여 입조하자 김유와 함께 자신이 몰래 하는 일에 대해 고한 것을 신백천이라는 자에게 듣자 홍유서를 죽였다. 특히 김준은 가신들에게 [[전라도]]와 [[충청도]]를 관할하게 하여 취렴(醉斂)했으며 김준의 여러 아들이 이를 본받아 세도를 믿고 횡포를 부리니 원성이 매우 많았다. 또한 김준은 몽골 사신이 올 때마다 만약 힐난하면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며 말했다. 나중에 가면 김준은 원종과 계속 대립하고 갈등하게 되자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원종을 미워하며 그를 폐위할 생각을 가져 부하인 장군 차송우 및 동생 김충과 이를 의논했으나 그들이 무리라고 반대하면서 실패했다. 그런 와중에 양아들 [[임연]]이 김준의 아들과 토지 문제로 싸운 것과 임연의 처가 [[노비]]를 죽인 것을 알고 유배를 보내야 한다고 말하자 [[사망 플래그|임연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원종은 김준의 횡포를 더는 참을 수가 없어 그가 총애하는 낭장 강윤소와 이를 상의했는데 강윤소는 왕이 김준을 증오하는 것과 임연이 김준과 사이가 나쁜 것을 알고는 원종에게 임연과 합세하여 김준을 제거하자고 건의했고, 원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강윤소는 임연을 찾아가 이를 말했고 임연도 합세하면서 거사하여 김준은 이들에게 참수되었다('''무진정변'''). 이때 김준의 암살 과정은 드라마틱한데 임연이 대정[* 大梃: 큰 몽둥이.]을 만들어 선물로 속여 거사하기로 했으나 김준이 관아에 나오지 않자 거사를 미루었다. 다음날에도 김준이 등청하지 않자 원종이 명령하여 강제로 나오게 만들었다. 왕명으로 관아에 나온 김준이 조당에 나갔는데 편전 앞에 머무르고 있던 김준을 본 원종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태연하게 정당 안으로 끌어들였고, 사전에 매복하고 있었던 [[김상]]이 임연이 만들어 놓은 몽둥이로 급습하여 김준을 때리자 김준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그 다음엔 검을 빼들어 찔러 죽이며 목을 베었다고 한다. 이때 죽은 연도가 집권 10년차인 1268년이었다. 사후 김준의 가족들과 가문 전체가 원종이 보낸 임연과 군사들에게 몰살되었고, 부하들도 전부 체포되어 반역죄로 처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