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준(고려) (문단 편집) === [[최씨 정권]]의 측근 심복 === [include(틀:고려 시대의 정변)] 그의 아버지인 김윤성(金允成)은 본래 가노였으나 주인을 배반하고 [[최충헌]]에게 의탁했다. 김윤성의 아들인 그가 벼슬을 받아서 김씨 성을 사용하고, '김인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뒤에 '김준'으로 개명하게 된다. 박송비, 송길유 등이 [[최우]]에게 칭찬하여 그의 신임을 받아 전전승지(殿前承旨) 벼슬을 받았다고 하나 최우의 첩인 안심과 [[간통]]하여 곤장 50대를 맞고 [[유배]]되었다. 수 년만에 돌아와 최우가 [[최항]]을 후계자로 삼는데 큰 힘이 되었으며, 최항이 정권을 이어받을 때 그는 직책이 정7품 별장이었다. 최항이 죽고 뒤를 이은 그의 서자 [[최의]]가 홀로 최양백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을 멀리하게 되자 마음 속으로 불평하면서 최의를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1258년 1월 김준을 천거했던 대장군 송길유를 [[부정부패]] 혐의로 최의가 유배를 보내면서 김준을 꾸짖자 최의와 서로 미워하여 만나보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김준은 풍골(豊骨)이 늠름했으며 천성이 관후(寬厚)하고 아랫사람에게 공손하였다. 또 궁술과 무예에 능했으며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해서 여러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고 날마다 호협(豪俠)스러운 청년 자제들과 교류하고 모여서 술을 마시었으므로 제 집에는 재산이라곤 없었다. 하루는 어떤 술수(術數)를 하는 중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 뒷날에 반드시 국권(國權)을 틀어 쥘 것이다."라고 하였다.''' - 《[[고려사]]》 <김준 열전> 1258년 3월 신의군 도령 낭장 박희실, 지유 낭장 이연소가 비밀리에 김준, 류경, 김충, 이공주, 박송비, 도령 낭장 [[임연]], 대정 박천식, 별장 동정 차송우, 낭장 김홍취, 김대재, 김용재, 김식재 등과 논의하여 4월 8일 최의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김대재가 장인인 최양백에게 참여하도록 권유하기 위해 이 계획을 얘기하는 바람에 계획이 누설되었으며, '''김대재의 처 최씨가 아버지 최양백이 최의에게 얘기한 사실을 듣고, 남편인 김대재에게 얘기하여 김준이 이를 김대재에게 듣게 되면서''' 다시 박희실, 이연소 등에게 일이 누설되어 일을 지체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이에 지난번에 모의한 자들과 별장 백영정, 대정 서정과 이제, 지유 조문주와 오수산 등을 소집하여 최의를 따르는 자를 공격했다. 지유 서균한 등을 불러 모아서 [[삼별초]]를 사청에 모으고, 사람을 시켜 >'영공(최의)이 죽었다.' 고 길에서 부르짖게 하자 듣는 자들이 모두 모였고, [[류경]], 박송비 등이 오자 대신으로 위세와 명망이 있는 자들을 추대하여 군중을 통솔하라고 얘기했다. 추밀원사 최온을 부르면서 박성재를 맞이하여 이들과 의논했으며 최양백을 부르면서 별초병을 통해 최양백의 입을 횃불로 지지면서 이를 베었다. 최의의 문졸을 시켜서 밤의 시간을 알리는 기구인 '경주'를 알리지 못하게 하면서 대오를 광장에서 나누었고, 관솔을 태워서 낮과 같이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안개가 끼었기 때문에 최의의 가병은 한 사람도 아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야별초들이 최의의 집으로 쳐들어가 집 벽을 무너뜨렸고, 외숙부 거성원발의 구출을 받아 도망가려던 최의를 찾아내서 죽이면서 실권을 잡게 되었다('''무오정변'''). [include(틀:무신 정권 기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