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종학(1951) (문단 편집) == 활동 == [[1977년]] [[MBC]]에 입사하고 [[1981년]] 드라마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을 통해서 첫 데뷔를 하였고[* 물론 수사반장 자체가 각 회마다 따로 진행되는 형식의 드라마였기때문에 전체 에피소드 연출은 아니다. [[이병훈(PD)|이병훈]] PD등 MBC 유명 연출가들은 여러 에피소드를 연출했고 이 작품의 연출은 유능한 신인들의 작업장이기도 했다.] 이후 [[조선왕조 5백년]] 회천문, 영웅시대[* 최불암과 유동근이 나온 기업드라마가 아닌 이문열 원작의 한국전쟁 시대극, 현석과 김용림이 주연을 맡았다.] 동토의 왕국, 북으로 간 여배우 등의 굵직굵직한 사극과 우리동네등의 소품등의 연출로 스타급 PD에 다가서게 되었으며 [[1991년]]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서 드라마 흥행에 기여하고 이후 [[SBS]]로 이적[* 정확히는 프리랜서 선언 후 SBS와 연출 계약이다. 참고로 그가 KBS, MBC 소속 드라마 PD 중 최초의 프리랜서는 아니다.(1호는 MBC 김한영 PD.)]해서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일약 스타급 PD로 자리에 오르게 된다. 후술할 송지나와 달리 [[조선왕조 오백년]]이나 그 이후 시대극들은 [[신봉승]] 선생과 작업한 경우가 많았다. 80년대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김종학의 걸작들은 모두 신봉승의 필력이 뒷받침 한 것이다. 신봉승 이후 파트너로 알려진 작가 [[송지나]]와 함께 모래시계를 통해서 스타급 PD에 올라서 꾸준한 흥행을 이끌어냈고 1995년 독립회사 제이콤을 설립하여 초대 사장이 되었다. 1999년 김종학프로덕션을 설립하여 2009년까지 초대 사장을 지냈었다. 물론 다 성공한 건 아니라서 [[1998년]]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백야 3.98]]이 쫄딱 망했으며, [[인샬라]]와 [[산부인과]]같은 영화도 제작했지만 모두 흥행들과 비평들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2013년에 배우들에게 지급해야 할 [[출연료]] 미지급 문제와 [[배임]]혐의 및 [[횡령]] 등으로 경찰에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었으나 7월 23일 연탄가스 자살로 사망하였다. [[향년]] 만 61세. 일명 '김종학 사단'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조문을 오면서 애도를 표하였으며 작가 송지나도 파트너를 잃게 되는 비극을 겪었다. 김종학프로덕션은 고인의 사망과 관계없이 드라마 촬영 및 제작은 현행대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신의(드라마)|신의]]가 그의 생전 마지막 참여작품이자 [[유작]]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