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종오 (문단 편집) == 둘러보기 == ||<-4><#19212a><:> {{{#white '''1983년 국방부 선정 6.25 전쟁 4대 영웅'''}}} || ||<:> [[월튼 워커]] ||<:>[[더글라스 맥아더]] ||<:> [[김홍일(군인)|김홍일]] ||<:> '''김종오''' || [[분류:6.25 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분류:제1야전군사령관]][[분류:군사혁명위원]][[분류:1921년 출생]][[분류:1966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전신 학교]][[분류: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장]][[분류:서원구 출신 인물]][[분류:김해 김씨]][[분류:태극무공훈장]] ● [[전두환]] 前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이후 선배 장군들을 몰아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6.25 전쟁 영웅을 선정해달라고 선배 장교인 [[박경석(1933)]] 장군에게 부탁한다. 둘은 육군대학 정규과정(박경석 중령, 전두환 소령 시절)에서 같은 기수로 교육을 받은 인연이 있다. ● 박경석 장군은 혼자서 4대 영웅을 선발할 수 없다면서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이한림]] 장군, 제2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이병형]] 장군, 제3보병사단장을 역임한 [[박정인]] 장군을 초청하여 회의를 했는데, 만장일치로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 맥아더 장군, 워커 장군을 선정했다. 당시에는 6.25전쟁에 참여한 장군들 거의 생존했고 이들에게 여론조사를 했을 때도 역시나 만장일치로 위의 4인이 선정됐다. 참고로 [[백선엽]] 장군은 10명의 예비명단에도 없었다. ● 영상 15:00 부터 확인 가능함. [youtube(giMpxMS2fUY)] ● 탈북민 출신의 기자 [[주성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결정지은 것은 백선엽이 아니라 김종오'''라고 평가하며 그가 지휘한 [[춘천 전투]]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북한에서 제작된 드라마 소설 '50년 여름'[* 1990년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총 22장으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1950년 6.25 전쟁 제 1단계 작전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서울과 대전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그리고 있다. [[http://www.nks.ac.kr/Word/View.aspx?id=1089|#]] 해당 드라마 집필진은 '''노동당 비밀 문서까지 열람할 수 있을''' 만큼 '당에 대한 충성'이 보장된 사람들이다.]에서는 춘천 전투에 대해서 드물게 고전을 면치 못한 전투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김일성 일가를 띄우기 위해서는 흰색도 빨간색이라고 우기고 볼 인간들조차 춘천에서의 전투를 '고전', '패배'라고 그리고 있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북한은 춘천 전투 직후 2군단장 김광협을 해임하고 무정으로 교체하고, 2사단장 이청송은 최현, 7사단장 전우는 최충국으로 교체했다. 전쟁 시작 며칠만에 군단 지휘관을 싹 교체하는 것은 웬만해서는 보기 드문 일인데, 뒤집어 말하면 주성하의 지적마따나 김일성이 춘천 전투에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김종오가 지휘하는 대한민국 국군과 맞섰던 춘천에서의 전투는 뭐라 쉴드를 치거나 할 수 없는 북한의 빼도박도 못할 대패였다는 소리다. 동시에 주성하는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도 사흘 동안 더 남하하지 않고 머무른 것도 춘천에서의 저항이 큰 원인이었으며[* 주성하는 조선인민군의 작전 계획은 6.25 전쟁 발발 초기 춘천을 하루 만에 점령하고 3일 뒤에는 수원을 점령해서 대한민국 국군의 배후를 차단한다는 것이었는데, 춘천의 김종오 예하 6사단이 조선인민군 2군단을 상대로 닷새나 막아내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조선인민군의 작전 계획을 무위로 돌렸고, 결국 배후 포위망 형성에 차질이 생긴 김일성은 서울에서 사흘을 허비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종오와 춘천 전투가 아니었다면 북한은 계획대로 바로 부산까지 들이닥쳤을 것이고 백선엽이 낙동강 방어선을 지휘하거나 미국의 인천 상륙 작전도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호평하고 있다. [* 또한 1952년 10월 김종오가 사단장으로서 지휘했던 [[백마고지 전투]]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그들의 '항미원조'(?) 전쟁에서 유일하게 패배했다고 인정한 전투였다.] [youtube(uwhyz4p1SIc)]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