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일/생애 (문단 편집) == 공식 집권 이후 행보 (1994 ~ 2011) == 김일성이 죽고 난 뒤 장례를 치를 때 장의위원 명단에 제1순위로 이름을 올려 애도기간을 강요했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첫 활동으로 낮 12시에 '''특별중대방송'''[* 제3방송 등을 통해서는 새벽부터 필청을 명령하였고, 대외에서도 수신 가능한 방송으로는 오전 11시부터 4차례에 걸쳐 예고했다.]을 통해 [[https://youtu.be/9PYMKgNjnYQ|'''평양시에 청류다리(2단계)와 금릉2동굴을 건설할데 대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51호')라고 온세계에 말해버린 [[https://www.mk.co.kr/news/home/view/1994/11/57290/|황당한 해프닝]]이 있었다. ~~부끄러움은 남조선 동포들의 몫~~[* 두 링크 중 앞쪽의 유튜브 영상에 출연한 탈북작가 도명학의 의견에 따르면, 이북에서는 숟가락으로 파도 굴을 팠다고 주장할 만큼 인민들을 동원해 전쟁용 굴(갱도)을 하도 오랫동안 뚫어서 굴이 많다고 할 뿐이지 터널을 잘 뚫어서 굴이 많은 게 아니라고 하며, [[남굴사]]의 [[북한 땅굴의 현실적 문제|병신같은 주장]]을 현지인의 경험으로 역시나 부정했다.][* 여담으로 금릉2동굴은 약 800m (2리)의 편도2차선 쌍굴식 자동차 터널이다. 아무리 남한에서 그 당시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비롯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했다지만, 영상에서 10리니 5리니 하는 것보다도 훨씬 짧은 이딴 걸 가지고 김정일은 대내외에 '우리 이런 터널도 뚫을 줄 안다!'라고 (그것도 지네 체제의 '신'이 죽고 난 다음 온 세계가 민감해진 상황에서) 자랑하고 선전하고 다닌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