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수(1962) (문단 편집) == 여담 == * 1962년생이지만 1년 유급해서 1963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빠른 63년생인 선동열이 나이는 더 어리지만 형 소리를 듣는다고. * 왼손 파이어볼러로서는 [[파천황]]격인 선수. 덕분에 많은 왼손 파이어볼러 후배들이 등번호 47번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다만 이상훈은 [[톰 글래빈]]을 존경해서 달았다고 밝혔다.], [[권혁]], [[나성범]][* 프로 데뷔 전까지는 투수였다. [[KBO 리그/2015년 포스트시즌#s-4.4.5.1|2015 플레이오프에서도 1이닝이지만 투수로 나왔을 정도]]. 게다가 나성범은 진흥고-연세대로 김정수의 직속 후배다. 그리고 나성범이 KIA로 오게된 2022년부터 직접 이 번호를 달고 뛰게 되었다.],[[김윤식(야구선수)|김윤식]]. * 역대 최저금액 FA 선수이다. 2000년 원소속팀 [[해태 타이거즈]]와 1년 총액 5천만원에 계약을 체결하였고, 사인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더 안습했던 사실은 김정수의 99시즌 연봉은 7,500만원이었다. 그러나 39살의 고령인데다가 좌완 원포인트로 나와서 거둔 성적이 평균자책점 4점대였기 때문에[* 1999 시즌은 특히 타고투저로 유명하던 시즌이었다.] FA 미아가 되었고, 결국 연봉 33% 삭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해태 출신 투수 3명이 FA로 풀렸는데, 해태 소속이던 김정수, [[이강철]]과 LG에서 뛰던 [[송유석]]이었다. 이 중에서 이강철은 해태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잡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6억 4천에 계약을 시도했으나, 삼성에서 최대 8억 5천을 주면서 삼성으로 가버렸고 송유석은 LG에서 통수를 맞고, 연봉 동결 후(7,500만원) 한화로 원치 않는 이적을 해야했다. 이 중에서 연봉이 깎인 사람은 김정수가 유일했다.] * 대표적인 별명이 '''[[까치]]'''인데 국산 야구만화 중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설까치]]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프로 입단 당시 김정수의 헤어스타일이 억센 더벅머리였고 반항심이 깊은 [[설까치]]처럼 김정수도 성격이 굽힐줄 모르고 약간의 반항적인 그 모습이 만화 속 [[설까치]]의 모습과 비슷했던 것. 87년인가 당시 스포츠 서울 기자가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인 설까치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말하고 그 뒤 부터 기사에 무등산 까치로 올려지게 되었다. * 그의 강속구와 들쭉날쭉한 제구력은 좌완 스리쿼터라는 투구폼과 합쳐저서 좌타자들에겐 그야말로 저승사자나 다름 없었는데, 살짝만 벗어나도 몸에 맞을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나가기가 어렵다고.[* 그의 제구력과 관련된 일화로 롯데와의 경기 중 좌타자 [[조성옥]]과 상대하던 중 공이 빠졌는데, 하필 그때 타자가 타임을 외치고 배터박스에서 나와서 안 맞을 공을 맞아 웃음을 주었다고 한다.] [[양준혁]]이 꼽은 현역시절 상대하기 어려웠던 투수로 [[구대성]], [[이혜천]]과 함께 자주 언급되곤 한다. * 김정수가 선수 생활을 하던 당시 보기 드문 강속구와 본인의 나쁜 제구력을 이용해 오히려 타자를 견제하던 모습과 그 당시 해태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 무서운 선배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의 일화 중 하나로, [[장정석]] 해설위원이 선수 시절 타석에 있을 때 자꾸 등 뒤로 공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습 번트를 대려고 시도하자 마운드에서 타석으로 내려와 "워메~ 확!" 하고 마운드로 돌아갔다고(...) ~~그걸 듣고 있던 포수[* 장정석은 1996년부터 프로야구에서 활동했으며 그 당시 해태 포수는 [[최해식]]이다. [[장채근]]은 1996년부터 해태 배터리 코치였다.]는 "넌 이제 X졌다잉~" 하는건 덤~~ 결국 배트도 제대로 내지 못 했다고.[* [[https://youtu.be/4ePQU9I3V1Y?t=708|장정석 해설위원이 직접 누구라고 밝힌 건 아니지만]] 좌완 투수가 드물던 해태에서 장정석에게 대선배 투수라는 점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했을 때 거의 확실하다.] *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의 시구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구 지도를 했다. 평소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수 코치를 반갑게 맞으며 "한국시리즈 최다승 투수 아니시냐"고 하자 "존경합니다"라고 화답한 것은 덤. * 천하무적야구단에서 2010 올스타 경기때 삼진을 당해 퓨처스 레전드 코치들이 섹시댄스 벌칙을 받게되는 굴욕을 맛봤다. * 2021년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하였다. 연세대 2년 선배인 [[김성래]]에게 무지 약했으며 [[고의사구]]로 1루로 보내고 다음 타자와 승부하자고 포수 [[최해식]]에게 말했으나 특유의 약한 제구력탓에 데드볼을 내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그 이후 김성래가 김정수에게 약해졌다고 한다. 노래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한국시리즈 우승 피로연 당시 부른 노래는 <꽃순이를 아시나요>라고 한다.[* 조계현은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 이종범은 조용필의 <모나리자>였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장채근]]이 술회하길 선동열, 이강철, 김정수는 모두 체조선수처럼 유연했다고 한다. 다만 몸이 유연한 것은 후천적. 김정수는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 산나물과 채소가 주식이었지. 소고기나 닭고기는 생일에 한번 볼까 말까 였고. 하지만 결국 그런 건강식이 내 몸을 유연한 알칼리성으로 만들었나봐."라고 말했으며 프로데뷔 이후 육류 섭취를 하다 보니 몸무게도 90㎏까지 늘었다. 근육통으로 고생했고 결국 5년 만에 옛날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고깃국도 국물만 먹고 술을 마실 때는 밥을 먹지 않는다. 칼로리 높은 술과 안주를 생각해서이다. 육류보다 생선과 야채로 영양보충을 했다. 만 41세에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 있는 피칭을 보인 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비롯됐다. * 그러나 사생활이나 자기관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는데, 그 김정수를 지도했던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이 대놓고 안타까운 선수라면서, '''그놈은 술만 줄였어도 대성했다.'''라면서, 불펜에서는 선동열에 버금가는 공이었으나, 아침 훈련때 캐치볼을 하면 술이 덜깼는지 상대방 머리를 넘긴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말 재능이 있는 놈인데 술때문에 망친 재능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00년대 기사에서도 김정수의 별명은 [[두주불사]]로 그가 술을 끊은 것은 2001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 테스트를 하면서, 애리조나 전지훈련에서 먹은 맥주 한캔이 끝이다. 라면서 뒤늦게 현역 연장을 위해 몸관리를 한 거지 이전에는 선동열, 김성한과 같은 주호 스타일에 [[장채근]]이 과거 일이니 좋게좋게 말해준거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유석]]이 밝히길 불펜포수가 모자라 송유석이 김정수의 연습투구를 받아준 적이 있는데 정말 눈 크게 뜨고 공을 받아야했다고 했다. 제구가 들쑥날쑥이어서 원바운드 공도 한 번씩 날라오고 성격과 구질이 똑같았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최해식도 김정수가 제 맘대로 공을 던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수는 오히려 본인은 포수가 공을 못 받게끔 던지는 연습을 했고 그래야 타자들이 본인의 공을 칠 수 없는거 아니냐고 했다. * 중고등학교까지 몸이 무척 야위었다. 고등학교 시절 182㎝의 키에 몸무게가 고작 65㎏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낙지’였다. 빼빼 마른 몸으로 흐느적거리면서 피칭을 한다고 붙은 별명. 가을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와인드업 모션에서 한 다리로 중심을 잡지 못해 좌우로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유연함과 폐활량. 81년 대표팀에 뽑혀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김정수는 체력측정 결과 마라톤 선수보다 폐활량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나 심각하게 전직을 고려했다. 유연함은 골프에서도 그의 능력을 배가시켰다. 한번도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보기 플레이를 한다. TV로 선수들 스윙 모션을 몇 번 보고 따라한 것이 전부.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코미디언 [[김병조]]가 술회하길 김정수의 결혼식 때 [[김응용]] 감독이 주례, 김병조 본인이 사회를 봤다고 한다. * [[양준혁]]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 후 팀에 잘 융합하지 못하고 낯을 가려서 투수 [[강태원(야구선수)|강태원]] 집들이에 일부러 늦게 참석하자 김정수가 '아따 준혁아 어째 인자 오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양준혁이 올 때까지 해태 선수들 전원이 식사에 손을 대지 않고 있어서 양준혁이 엄청 죄송했다고 했고 서서히 팀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김정수는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말하길, 양준혁이 해태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수가 해태의 최고참이었다. 나이는 38살.] 양준혁은 삼성에 복귀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해태시절 군기를 주입시킨거다. 즉 김응용 야구컬러 입히면서 김응용 수족 노릇을 했다. 이승엽이 김응용 뒷담하다가 양준혁에게 개털린게 대표적인 예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