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수(1962) (문단 편집) === [[해태 타이거즈]]를 떠난 이후 === || [[파일:rlawjdtndptmzldl.jpg|width=300]]|| [[파일:20020703232455602.jpg|width=250]] || [[파일:kp1_2031021u1186.jpg]] || || [[SK 와이번스]] 1기 시절 || [[한화 이글스]] 시절 || [[SK 와이번스]] 2기 시절 || 그러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에서는 다소 푸대접을 받았다. 패넌트레이스에서는 별로 활약하지 못한 탓도 있고, 또 해태가 그다지 선수들에게 돈을 후하게 쓰던 팀이 아니었기도 했고..[* [[선동열]]도 연봉이 동결된 적이 있을 정도... [[1987년]] 시즌 후에 그랬는데, 이 해 [[평균자책점]] 1위를 했지만 시즌 중 부상을 당해 한 달정도 등판을 하지 못했기 때문. (원래는 삭감당할뻔하지만 해태 특유의 햇빛효과로 동결된다.)][* 그나마 선동열이 주니치로 임대된 이후 해태 선수들 연봉이 전반적으로는 올랐다만 김정수는 1억 이상을 받지 못했다. 1997년에 받은 9,160만원이 선수생활 동안에 받은 최고연봉이다. 같은 시기 팀 내 최고연봉은 1억 2천만원을 받던 [[조계현]]이며 그 뒤를 1억 1천만원을 받던 [[이강철]]이 뒤를 이었다. 팀 내 1, 2선발과 마무리투수의 연봉 치고는 상당히 해태가 돈을 안 썼기 때문에 별로 못 받은 수준이었다.] 홀대에 대해서는 [[김응용]] 감독이 좌완을 좋아했다고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작 [[김응용]] 감독은 끝끝내 제구가 교정되지 않은 김정수를 인터뷰에서 많이 깠다. 심지어는 "발로 던져도 내가 더 잘 던지겠다"고까지.. 결정적으로, [[김응용]] 감독이 좋아하는 타입은 그냥 좌완이 아니라 [[권혁]], [[강영식]]같은 '''덩치 좋고 볼 빠른 좌완'''이었다.[* 그래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강영식]]을 데려왔고 한화에 부임하면서 [[송창현]]을 데리고 온 것이다.][* 타자로 범위를 넓히면 [[채태인]], [[양준혁]].] 프로 데뷔 후 첫 FA 기회였던 [[2000년]] 시즌 전 FA 선언 때 해태 구단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옛 쌍방울 선수단을 이어받은 신생팀 [[SK 와이번스]]로 원치 않게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이적해야 했다. 후술하겠지만 FA 선수임에도 연봉이 삭감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령탑이었던 [[강병철]]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는 편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기량 하락과 겹쳐 예전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한 채 2000년 시즌 후 1년만에 방출되었다. 원포인트 릴리프로 뛰었음에도 평균자책점이 7점대로 상승했으니 부활이 어렵다고 판단되었기 때문. SK에서 방출된 후 테스트를 통해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는데, 당시 사령탑인 [[이광환]] 감독은 김정수 등의 베테랑 선수들을 등용하는 편이라 기회를 꽤 받았다. 한화에서 뛰던 2001년~2002년에는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10홀드 이상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령 선수로 뛰었고, 좌타자 전문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해줬다.[* 사실 해태 말기부터는 원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는 [[유승안]] 감독이 부임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대로 은퇴하나 싶다가 2003년 6월 9일 현금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돌아와 그해 리그 최고령 선수로 활동하며[* 당시 SK 감독이었던 [[조범현]]과 겨우 '''2살''' 차였다. 물론 조범현이 조기입학을 하고 김정수가 1년을 유급했기 때문에 학번은 4학번 차이났다.] 경기에 출장할 때마다 최고령 등판 기록을 세웠고,[* 현재는 [[송진우(야구)|송진우]]가 김정수의 기록을 경신해 만 43세 7개월 7일로 최고령 등판 기록을 갖고 있다.] 시즌 후반 8홀드를 올리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정규시즌 종료 후, [[2003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만 41세 2개월 23일'''의 나이로 구원 등판하며 '''[[KBO 한국시리즈]] 최고령 출장기록'''을 세웠다.[* 김정수의 첫 한국시리즈는 1986년이고, 이 때 김정수는 18년차의 베테랑이었다. 시작과 끝을 한국시리즈로 맺은 셈.] 다만, 4차전 구원등판 상황에서 첫 타자인 [[전준호(1969)|전준호]]의 머리를 맞추고 칼같이 퇴장당한 것은 옥에 티로 남았다. 빈볼은 아니었지만 그 나이까지 여전했던 제구력 불안 때문에(…) [[1996년]] [[최해식]]에 이어 '통산 2번째 [[KBO 한국시리즈]] 퇴장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마지막 시즌에 출장한 한국시리즈에서 소속팀 SK가 준우승에 그치면서 최고령 우승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당시 시점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경기 출장'''과(31경기, 한국시리즈만 계산했을 시 23경기) '''최고령 출장선수'''(41세 2개월 27일) 기록에 이름을 남기고 은퇴할 수 있었다.[* 포스트시즌만 계산하면 한화 [[송진우(야구)|송진우]]가 2007년 플레이오프 등판으로(만 41세 7개월 28일) 기록을 경신한 후 LG [[류택현]]이 2013년 플레이오프에 등판하면서(만 41세 11개월 26일) 다시 경신, 현재는 [[임창용]]이 2018년 와일드카드 1차전에 등판하며(만 42세 4개월 12일) 경신했다. 한국시리즈 최다경기 출장 기록 또한 [[배영수]]가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등판해 통산 24경기에 등판하며 기록이 경신되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최고령 등판 기록도 [[임창용]]이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등판해 그 기록을 경신했다(41세 4개월 21일).] 2003년 10월 28일부로 SK 와이번스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