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재현(1975) (문단 편집) === 고관절 수술과 [[지명타자]] 전향 === 고관절 부상[* 정확한 병명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으로 선수 생명이 끝났다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한 케이스. 일반인이 아닌 운동선수인지라 무리하다 재수술을 할 수도 있었다[[카더라]]. 그러나 원래 포지션인 외야수 수비는 거의 보기 힘들게 되었고, 이후 [[지명타자]]로 주로 출장했다. 부상 복귀 이후에도 수비에 많이 나섰다면 은퇴가 더 일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데뷔시즌 20-20을 기록했을 정도의 준족이었지만, 고관절 부상 이후 도루 능력을 거의 상실한 것도 아쉬운 점. 헌데 알려진 이미지는 다르게 김재현이 17시즌 동안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시즌은 4시즌에 불과하며 지명타자 전환 이후 은퇴시즌까지 통산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도루숫자가 매년 5개 ~ 8개 정도를 꾸준히 기록한걸 보면 그럭저럭 준수한 발은 유지한듯 하다. 사실 고관절 부상 이전 외야수를 보던 시절에도 우수한 타격과는 별개로 외야 수비 능력은 가장 수비가 쉽다는 좌익수 포지션에서도 그닥 좋지 못한 편이었다.[* 사실 이것도 점잖은 표현으로, 눈을 썩게 만드는 수준이었다는 증언이 많다.(...)] 부상 이후 [[지명타자]]로 고정한 것은 본인 커리어를 위해서도 잘 한 일이다. 1990년대에 [[LG 트윈스]]에서 좌익수로 뛰었을 당시에 상당한 미남으로 팬들에게 인기가 많아 잠실 3루 외야쪽 좌익수 자리가 홈팀 자리보다도 먼저 찼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거기에 모여있던 팬들도 수비력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2005년 [[SK 와이번스]] 입단 후 2010년 은퇴까지 6시즌을 치르면서 소화한 수비이닝은 고작 24이닝으로, 그마저도 대부분 교체로 인한 대수비 출장이었다. 2005년과 2006년은 수비 출장 기록은 없고, 2007년 중견수로 1경기 2이닝, 2008년 우익수로 2경기 11이닝, 2009년 1루수와 좌익수로 각각 4경기 7이닝과 2경기 2이닝, 2010년 1루수와 좌익수로 각각 1경기 1이닝씩 나섰다. 그래도 수비 연습은 꾸준히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9시즌 1루 '''[[대수비]]'''로 나와 그것도 플라이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후 수비 연습도 안 끼워준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2010시즌에도 한번 [[좌익수]]로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유격수를 보던 [[김연훈]]이 좌익수 수비 위치까지 달려가 플라이를 잡아냈는데 그때 김재현의 표정이 오묘(...)했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고관절 괴사]]의 원인[* 고관절 괴사의 정확한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스테로이드]] 계 [[약물]]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곤 하지만 '''스테로이드와 관련 없는''' 일반인 중에서도 고관절 괴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중에 약물이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장타력 상승을 위한 스테로이드계 약물 복용이 의심되는 선수 중 하나로 지목되곤 한다. 하지만 김재현의 홈런 커리어 하이는 21개를 친 94년[* 당시 엄청난 투고타저라서 홈런 5위권이었다. 1위는 25개를 친 당시 [[방위병]] 출신인 '''[[김기태(1969)|김기태]]'''.] 데뷔 해와 99년[* 이 해는 KBO 역사상 손꼽히는 타고투저 시절이었다.]으로 발병 시점에 비해 상당히 과거의 일이다. 발병 직전 시즌에는 오히려 홈런을 8개 밖에 못 쳤을 만큼 장타력이 떨어져 있었으므로 약물 복용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약물 복용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급격한 체중 증가 또한 현역을 넘어 은퇴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김재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SK 와이번스]] 구단부터가 [[아시아 시리즈]]에 두 번 참여하면서 도핑테스트도 받았기 때문에 KBO 팀 중에선 약물에서 그나마 깨끗한 팀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재현 약물설은 호사가들의 의혹일 뿐 확실히 알려진 바 없는 음모론 수준에 가깝다. 그래도 LG에 있을때는 두 자릿 수 홈런을 곧 잘 치고 3할 타율도 쓰고 그랬다. 단지 구장이 국내에서 가장 넓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야구장]]'''이라 손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하게 비슷한 케이스로 성적을 좀 까먹어도 어마어마하게 기록을 쓴 동갑내기 라이벌 [[심정수]][* 단, 심정수는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잠실에서 실질적으로 있던 시기는 약 7년에 불과했다.] [[김동주(타자)|김동주]]도 비슷했다.[* 김동주는 풀타임으로 뛰고도 3-4-5 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것은 덤이다.] 오히려 이 고관절 부상에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소싯적 문란한 사생활(…)이다. 후술하겠지만 LG 시절 음주운전으로 2차례 적발된 바 있고, 1990년대 후반 LG에서 [[심재학]], '''[[최향남]]'''[* 특히나 최향남의 경우 그 유명한 '''해태'''에 지명받은 선수였다. 그 시절 놀기 좋아라 하는 성격인데 팀은 80년대 [[똥군기]]시절이고, 툭하면 거의 줄빠따 맞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해태의 빡센 군기를 피하려 현역병으로 군문제를 해결했을 정도.] 과 더불어서 가장 [[정수근|잘 노는]] 선수였던 만큼 '''[[술]], [[나이트]]''' 등 목격담도 수두룩하며, 고관절 악화가 과다한 음주 등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약물보다 오히려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일례로 당시 한 집에서 같이 살던 장인어른[* 참고로 김재현의 장인은 [[코스닥]] 상장기업이자 [[동국제강]] 제1협력업체인 기전산업의 [[김종원]] 회장.]이 참다못해 김재현의 차 키를 압수했다는 유명한 [[카더라]]가 있고, 가끔 [[구리시|구리]] 시내에서 [[LG 트윈스 2군|LG 2군]] [[GS챔피언스파크|경기장]]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타면, 나이 지긋하신 기사분 중에 젊을 때 김재현이 워커힐에서 술이 쩔어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데려다줬다는 증언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김성근]] 감독과 그 당시 LG로 [[트레이드]]됐었던 [[양준혁]]을 만나 많은 걸 배웠고[* 여담으로 이듬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재현과 양준혁은 서로 적으로 만난다.], 그 이후로 베테랑급이 된 뒤에는 팀의 정신적 리더로 발돋움하였다[* [[클로저 이상용]]의 등장인물인 [[안준민]]이 이 시기의 김재현을 모티브로 했다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김재현의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고관절 부상]]과 [[지명타자]] 전업은 앞에서도 말했듯 [[이병규(1974)|이병규]]에게 밀리는 계기를 제공[* 이병규도 역시 LG 2기 시절 국내로 복귀 했을때는 2년간은 풀타임 외야수 1년은 지명타자와 외야를 겸업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아예 지명타자로 전업을 했다.]했으며, SK에서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묶이면서 누적 스탯을 상당히 손해봐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