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일성종합대학 (문단 편집) == 학사 관리 == [[베트남인]] 유학생 부 비엣 느아는 "수업이 끝나면 [[인민대학습당]][* 국립중앙도서관 정도의 개념이다.]에 가서 공부를 해요. 김일성대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요. 북한 최고 수재들만 모였어요."라고 말하였다. [[중국인]] 유학생 왕틴찬은 "김일성대학 학생들은 모두 공부벌레다. 캠퍼스는 다람쥐와 꿩이 수시로 나타날 만큼 아름답지만 학생들의 관심은 오로지 공부다. 놀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험이 너무 많아 공부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1년 동안 유학하는 데 드는 비용이 7,300달러(약 805만원) 수준이라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northkorea/2016/10/01/1801000000AKR20161001025600014.HTML|#]] [[평점]]은 5, 4, 3, 2, 1점 (A~F)이 있는데 이것은 러시아에서 쓰던 채점법이 그대로 넘어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교에서의 수강 신청과는 달리 수강 신청의 개념이 없고 학교에서 정해 준 대로 수업을 들으며 한 학기당 4~5개 과목 정도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기자 [[주성하]]는 대학 전체 공통과목 17개(김일성주의노작, 김일성주의기본, 혁명역사, 주체철학, 제2외국어, 조국통일 및 남조선문제, 미일제국주의 조선침략사, 환경보호 등이 있으며), 전공 13개 과목으로 30개 과목을 배우고 졸업했다. 이 중 6개는 P/F이고 24개는 점수가 나오는 과목이다. 수강 신청에는 자율권이 없고 대학 본부에서 결정한다. 강의 한 시간은 45분이고 강의는 주당 50시간 정도. 학기는 2학기로 상반 학기와 하반 학기로 구분된다.[* 5~1점 성적 표기, 미리 정해진 수업 시간표는 공산권 국가들 대학교육 방식이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요즘도 그렇게 하는 곳이 많다.] 북한은 1996년부터 새 학기를 4월에 시작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대학 강의는 8시 30분에 시작하고 겨울철에는 아침 9시에 시작한다. 졸업시험은 김일성주의노작, 외국어, 전공과목, 졸업논문이라는 4개 과목에 한해 치른다. 오전에 90분 강의를 3강좌 하면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는 자습시간과 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 시간이다. 그런데 김일성대에서는 중간고사나 학기말시험보다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 문답식 경연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작은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을 완전히 외워서 암송하는 것이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사상 투쟁 무대에 올라 비판의 대상이 되며, 한 단락을 빼먹거나 몇 단어를 틀리다간 퇴학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끝내고 나면 눈물까지 흘린다고 한다. 거기에 주체사상·조선로동당투쟁사·마르크스-레닌주의철학·혁명전통 등의 정치 과목이 전체 교과 과정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필수교양인데다가, 매년 250시간 가량의 군사학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특히 2002년부터는 주체사상 강의가 대폭 확대되어 쓸데없는 학습 부담이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김일성동지 혁명력사" 필수과목을 담당한 여교원이 7.4 남북공동성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수령님의 [[민폐|회담 전략]]은 [[이후락]]을 쩔쩔 매게 했습니다. 회담 때문에 온 이후락을 우선 극도로 피곤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초대소에서 잠자리에 들자마자 곧바로 깨웠습니다. 그때가 새벽 1시였습니다. 새벽 1시에 차에 태워 싣고 가니 이후락은 혹시 총살하는 줄 알고 겁에 질려 쩔쩔 맸습니다. 도착한 곳에서 이후락은 열려진 문 사이로 '어서오라. 이후락'[* 실제 김일성은 이후락에게 '이 부장 선생', 이후락은 김일성에게 '수상 각하'라고 불렀다. 북한에서 '선생' 칭호는 북한 체제 밖에 있는 외부 인사를 적당히 대접하여 부르는 말이다. [[유홍준]] 교수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북한편을 쓰려고 방북했을 당시 사람들이 다들 본인을 '교수 선생'이라고들 불렀다고 회고했다.] 하는 우렁우렁한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예상도 못하고 수령님을 만나게 된 이후락은 이후 '예, 예' 하면서 홀린 듯이 우리 제안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이후락이 갈 때 수령님이 [[성천군|성천]] [[담배]] 2박스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성천은 조선 후기부터 담배의 특산지였으며, 성천 담배는 성천초(成川草)로 불렸다. 성천뿐만 아니라 평안도 일대가 담배 재배에 알맞아서 평안도 담배는 서초(西草)로 불렸다고.] 이후락은 이 담배 때문에 실각됐다고 합니다. 담배 맛에 홀린 이후락이 [[박정희]]에게 이 담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몰래 피웠다고 합니다. 원래 이후락은 박정희의 심복이었으나 북에서 받아온 담배를 몰래 피운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박정희는 이때부터 이후락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구실을 붙여 잘라 버렸으니 결국 이후락은 성천 담배 때문에 실각된 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일성의 회담 전략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후락은 김일성과 만날 시간을 지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방북 첫날 긴장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으며, 잠이 들락말락하던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갑자기 북한 당국자들이 깨워서 차에 태워 갔다고 한다. 이때 이후락은 만약 북한이 자신을 감금하고 국가 기밀을 대라고 요구할 경우 자살하기 위해 [[청산가리]]까지 휴대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만난 사람이 김일성. 하필 이때 이후락이 가지고 있던 약이 녹아버려서 바로 악수할 때 손을 내밀지 못해서, 김일성이 순간 멈칫했다고 한다. 물론 이후락이 김일성에 꼼짝 못 했다거나, 담배 때문에 실각했다는 건 북한의 허위주장[* 이후락이 중정부장에서 쫓겨난 진짜 계기는 [[과잉 충성|충성 경쟁]]을 하려다 독단으로 일으킨 [[김대중 납치 사건]] 때문이었다.]이지만 이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 및 1986년 [[월간조선]]의 [[이후락]] 인터뷰 참조.[* 2009년 이후락 사망 이후 월간조선에 한 번 더 실렸다.] 다만, [[김정은]] 정권 들어서 실용주의적 기풍이 확산되며 위와 같이 사상을 강조하는 학풍은 크게 완화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선집을 외우는 것에 대한 평가가 폐지되었고,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암기 경연대회를 여는 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김정은이 직접 학술 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시해서 정치 과목 비율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상술된 충공깽스러운 에피소드들은 김정일 정권 초반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사회 기반이 흔들리자 내부 기강을 잡기 위한 강박적인 압박의 차원이 컸다. 이 때도 모든 사람이 선집을 외웠다기 보단 선집을 잘 외우는 사람들을 내세우거나 신입생들의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등 보여주기식 정치 선전의 색이 짙었다. 굉장히 똑똑한 학생은 조기졸업이 가능하며 박사도 굉장히 빨리 받는다. 예로서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4vf7AQJnGGQJ:www.kwangmyong.jp/texts/2010/rodong_nk100531.html+&cd=1&hl=ko&ct=clnk&gl=kr&client=firefox-b-ab|2010년 기준]] 김일성종합대학 교육과학연구쎈터 소장을 맡고 있는 리관호를 들 수 있다. 리관호는 평양제1고등중학교[* 각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을 제1중학교에 모으고, 그 중 가장 뛰어난 학생을 평양제1중학교에 모아서 공부시킨다.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 대비도 평양제1중학교에서 한다.]를 나와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진학했는데, 남들 5년 배울 수학과 물리학을 2년 만에 이수해서 '고체의 열력학적상태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3학년(21세) 때 학사 학위를 얻었다.[* 자연과학부 학사과정은 5년이 정상] 26세 때 생체물리학 분야에서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자체 조직화 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 28세 때 부교수가 되었다.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3100000/2002/09/003100000200209102146332.html|31세 현재 (2002년)]] 물리학부 생체물리학 부문 강좌장을 맡았다. 당시 영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나 31세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서 어머니가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자연계열 박사 취득에는 평균 63개월 (5년 3개월)이 소요되고 석사 취득에는 2년이 걸린다. 상당히 빠른 과정을 밟더라도 만 29세는 되어야 박사를 받을 수 있다.] 해외 논문이 차단되어 연구 수준이 낮고, 교육 과정의 약 40%가 김씨 부자 찬양이나 군사학에 낭비되고 있다. 실습도 엉망인데, 30년 전에 쓰이던 도구와 중국제 싸구려 약품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원문학, 이공계 쪽 이론 교육에 사용되는 학부 교재는 거의 최신이다. 러시아, 미국 원서를 보기 때문이다. 영문학과 출신 [[김금혁]] 씨도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재들로 수업을 했으며, 교실 내 TV를 통해 [[BBC]] 뉴스를 시청했다고 증언했다. 사상과 관계된 내용은 최신이든 고전이든 모두 금지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90년대에는 학부생들에게는 완전히 금지였다. 금서를 밤에 몰래 필사해서 돌려보는 비밀 독서회 같은 식으로 공부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같은 것도 다 금서이다. 90년대에 돌아다니던 책 중에는 '미국 개관' (500여쪽)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철저한 정보통제를 받고 있던 학부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 식량 생산이 한 해 6억t, 농부는 전체 인구의 2.5%, 농업 비중은 GDP의 4% 정도였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는 북한 대학생들에게는 상상도 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http://www.dailynk.com/%EB%B6%81%ED%95%9C-%EB%8C%80%ED%95%99%EA%B0%80%EC%97%90-%EC%9D%B8%ED%84%B0%EB%84%B7-%EC%9C%84%ED%82%A4%EB%B0%B1%EA%B3%BC-%EC%97%B4%ED%92%8D/|2010년]]에는 [[위키백과]]가 인쇄본(200여 쪽)으로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충격을 주고 있다. [[파일:정치경제학_기말시험.jpg]] 여담으로 한 때 인터넷상에 김일성종합대학 정경대학 기말고사 시험 문제가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저 수식은 실제 있는 수식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s-5.1.2.4|스탈린주의 문서의 잉여가치 문단]] 참조. 단 조작된 이미지라는 설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북한 [[문화어]]에서 '동지'는 앞말과 '''붙여''' 쓴다. '동지'뿐 아니라 '장군' 등의 직함 역시 앞말과 붙여 쓰게 되어 있다. 즉 "위대한 '''김일성''' 동지" 운운한 대목은 "위대한 '''김일성'''동지"가 되어야 맞는다. 특히 북한 인쇄물에서 김일성과 관련된 문구에는 절대로 오자가 있을 수 없다. 북한 관련 문서에서 유용한 진위 판별법. '있다' 등의 보조 용언도 문화어 표기에서는 모두 앞의 본용언과 붙여 쓰게 되어 있는데, 이 문서에는 띄어져 있다. 아울러 의존명사도 붙여쓰는 것이 문화어의 정서법인데 그렇지 않다. 게다가 벡터는 문화어에서 '벡토르'라고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고, 같은 이유에서 '열벡터(列vector)'역시 '렬벡토르'가 되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작의 여지가 있다. 어떤 경제학과 학생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지어낸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