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은중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그는 [[신태용]]과 함께 대표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선수였다. 김은중이 자신의 대표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던 것은 1998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였다. 당시 [[이동국]]과 위력적인 투 톱을 이루어 공격진을 이끌며 대한민국에게 8번째 우승을 선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에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나이지리아]][* 2007년 이후 [[FIFA U-20 월드컵]]으로 대회명 변경.]에도 이동국과 함께 주전 공격수로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이후 수많은 축구 팬들이 이동국-김은중 투톱의 재현을 염원했지만 현실에서는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양 선수의 소속팀과 대표팀 활약 시기가 계속 엇갈렸다. 그나마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호흡을 맞춘 정도고 성인연령대 국가대표팀에서는 2004년도 바레인과의 평가전에서 함께 선발출장해서 2:0승리를 이끌었지만 이게 국대에서도 듀오의 마지막이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 감독으로서의 [[본프레레]]의 데뷔전이었다. 대한민국판 꿈의 투톱이자 영혼의 투톱이었다. 그나마도 당시 대표팀이 3-4-3포메이션을 주로 사용, 원톱 자원인 이동국 김은중이 같이 뛴 일은 드물었다. 주로 이동국이 선발로 투입되고 경기 양상에 따라 김은중이 교체 투입되는 수순. 거기에 서로 교체된 경우도 있어 아시안게임 6경기 중 두 사람이 같이 뛴 시간은 146분에 불과하다. 꿈의 투톱이 꿈의 투톱인 이유는 역시 AFC U-19 대회 한일전일 것이다. 예선에서 한 판, 결승에서 한 판 붙었는데 이동국과 김은중이 두 경기에서 서로 한 골씩 사이좋게 뽑으며 연거푸 2:1 승리를 거뒀다. 특히 마지막 결승전 김은중 패스 후 이동국 터닝슛으로 일본이 가라앉아 버렸다. 세간의 평가만이 아니라 이동국, 김은중 두 사람 모두 종종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서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고는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프로팀에서 모두 이 둘의 재결합은 이뤄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바레인전도 이동국이 골을 넣으며 승리는 했지만 뭔가 두 사람끼리 호흡으로 탁! 하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웠던 경기였다. A대표팀으로 올라오면서 [[히딩크호]]의 초창기에도 감독의 시야에 포착되었고 국대 차출도 몇 이뤄내곤 했지만, 모의전에만 간간이 등장했을뿐 끝내 [[황선홍]]과 [[안정환]]의 철옹성을 넘질 못하고 [[이동국]], [[김도훈]], [[박성배(축구)|박성배]]와 함께 영광의 순간을 함께하진 못했다. 낙마한 자원 면면만 보더라도 공격수의 화양연화 시대속에 기량을 증명할 기회조차 없었던 비운의 선수였던 것. 이후 황선홍의 은퇴 후 [[코엘류호]]에선 [[조재진]]과 함께 차세대 자원으로서 자주 등판되었고 이어지는 [[본프레레호]] 초창기까지 엔트리에 이름을 보였지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을 마지막으로[* 이 조차 교체 카드로서만 벤치에 머물다가 조별 리그 한경기에 늦은 시간 교체로 출전한게 전부였다.] 대표팀에서 얼굴을 비치는 일은 없었다. 애당초 실명으로 세계구급 무대에서 활약을 보이기엔 한계가 너무도 명확했던게 중론이었다. 통산 A매치 15경기 5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