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원준 (문단 편집) === 데뷔 및 전성기 === [[1973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당시 [[성동구]].]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 김기영씨로 [[산부인과]] 전문의. 어머니는 간호사로, 아버지가 인턴으로 일하던 병원의 간호사였다. 할아버지는 [[소아과]] 의사였으며, 고모부도 의사다.] 밑에서 엄격하게 자랐으나, 고교 시절에 4인조 아마추어 밴드 '쥬크박스'를 결성해 활동했고,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예술대학]]에 진학, 재학 중에 [[메탈(음악)|메탈]] 그룹 'Last Scene'을 거쳐 [[통기타]] 클럽인 '예음회'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에 더욱 심취한다. 1992년 8월 예음회 선배의 오디션 추천으로, 당시 제일기획에서 개최한 가수 오디션을 통해 3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다. 당시 제일기획에서는 같은 삼성그룹 계열인 [[삼성물산]]의 의류사업부에서 런칭한 새로운 패션브랜드인 '카운트다운'의 광고 기획을 맡았는데, 참신한 신인 가수를 발굴하여 음악과 [[광고|CF]]를 동시에 선보이며 유행을 만들어가는 파격적인 광고 전략이 수립되어, CF 전속모델을 겸하는 신인 가수를 발굴해 내는 과정에서 김원준이 뽑혔다. 이 오디션에서 불렀던 노래가 자작곡인 '모두 잠든 후에'다. 제일기획은 곧바로 김원준의 데뷔 앨범 제작에 돌입했으며 김원준의 자작곡들을 비롯해 기성작곡가들에 받은 곡들을 모아 음반 작업을 진행하고, 동시에 김원준은 카운트다운 광고 촬영과 8일간 밤샘작업을 통해 음반 녹음을 수행하는 등 타이트하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짜여진 계획 속에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김원준은 '''오디션 합격 후 45일 만에 CF 모델과 가수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데뷔 앨범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는 가요 차트 17회 1위(KBS [[가요톱텐]] 4주 연속 1위,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7주 연속 1위 등)를 차지하면서 김원준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리며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youtube(Ns_Nz875pYQ)] ▲ 김원준의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의 뮤직비디오[* [[2022년]] 기준으로 정확히 30년 전인 [[1992년]]에 촬영된 영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감상하자. 원색 위주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상효과와 패션은 그 당시 [[X세대]]로 불리던 20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행하던 최신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 데뷔 당시 대표적 미남스타 신인 아이돌의 이미지가 강했던지라 롱런을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나, [[1993년]]부터 각종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하여 당시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TV연예에서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 [[이영자]]와 함께 영화 [[보디가드]]를 패러디했는데,[* 톱가수로 나오는 이영자를 간주 때 괴한이 무대 위로 올라가 총으로 위협하며 이영자를 인질로 삼는데 괴한의 총에 왼쪽 어깨를 맞음에도 불구하고 발차기로 괴한을 제압한뒤 육중한 이영자를 김원준이 업고 나가던 장면은 그야말로 큰 화제를 일으키며 김원준의 인지도는 전국민 아이돌로 급상승했다. 이영자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립싱크로 부르며 [[김완선]] 따라잡기 댄스도 꽤 화제였다.] 이것으로 단순한 10대의 아이돌 스타를 넘어서 2030 세대 및 폭넓은 연령층까지 포섭하게 되며, 이듬해에는 [[1990년대]] 초중반의 대표적 문화현상이었던 X세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얻기 시작한다. [youtube(t8H313TsSVg)] ▲ 1993년 X세대의 대표주자로 [[이병헌]]과 함께한 아모레 트윈엑스 CF 그리고 그 해 8월, 2집 '나에게 떠나는 여행'을 발표하면서 록과 댄스리듬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자작곡 '언제나'를 타이틀곡으로 활동을 시작, 1집 때와는 사뭇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1993년 골든 디스크 본상, 10대 가수상을 [[MBC]], [[한국방송공사|KBS]]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오디오와 비디오가 결합된 가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어, 1994년 7월 3집에서는 '너 없는 동안'을 타이틀곡으로 활동하여,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짧은 다짐'을 후속곡으로 활동했다. '너 없는 동안'은 하우스 리듬과 '허리춤', 치마패션으로 일약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는 등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 골든컵의 영광을 안았다. 3집 때의 인기가 절정이었고, '짧은 다짐'이 일본음악과 일부분이 흡사하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사실 두 곡은 같은 샘플을 사용한 곡으로 무대 활동에서는 해당 부분을 약간 편곡한 방송버전으로 변화를 주었으며 이후 콘서트의 정식 넘버가 될만큼 중박 정도로 히트한 곡. 당시에는 골든컵을 수상한 룰라의 "비밀은 없어"와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오른 곡이다. [[https://youtu.be/0Jkjn-DH1qQ|영상]] [[파일:kwj151.gif]] [[파일:kwj123.png]] 조각같은 외모 덕분에 데뷔와 동시에 드라마와 영화 제의가 쏟아졌으나 가수 활동의 전념을 고집하다 [[1995년]]에는 결국 영역을 넓혀 [[공군사관학교]] 생도의 생활을 그린 [[KBS]] 드라마 [[창공(드라마)|창공]]에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이 드라마의 주제곡인 '세상은 나에게'도 김원준이 직접 작곡해 불렀다. 주제곡이 크게 히트했으며 드라마 자체의 평가는 고만고만하다. 영화 불의 태양은 당시 소속사와 제작사간 이해 차이로 인해 스카라극장에서만 공개되어 언급하는 사람이 드물다. 김원준은 1990년대 대표 스타로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카운트다운' '트윈X' 등을 비롯한 광고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당시 패션유행을 일으킬 정도였다.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1994년]]에 발표한 3집 앨범 '너 없는 동안'은 앨범판매량 140만장 이상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김원준 신드롬' 을 일으켰다. 데뷔 앨범 때 부터 타이틀 곡 및 다수의 곡들을 작사/작곡 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도 갖추었던 김원준은 1995년 10월 발표한 4집 'Dear'로 자신이 거의 전곡을 작사,작곡,편곡 및 직접 앨범 프로듀싱까지 담당해 뮤지션으로서 진일보했음을 알렸고 타이틀곡 '넌 내꺼'가 가요 차트에서 1위까지 오르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거기에 이듬해인 1996년에 발표한 5집 '[[쇼(노래)|쇼]](Show)'[* [[김동률]]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김동률이 고교시절 TV에서 본 김원준의 가수 활동 모습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김동률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처음 김원준에게 들려준 당시에는 클래식한 분위기였으며 김원준이 록댄스 넘버로 편곡을 제안하며 지금의 쇼가 되었다.]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1위 후보까지, TV가요 20에서는 1위 자리에 올랐으며 가요톱텐에서도 상위 랭크되는 등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게 된다.[[https://www.youtube.com/watch?v=ExbrVHVMrwI|#]]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