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희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동창 [[박철순]]과 함께 국민학교 6학년 2학기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현역 시절 별명은 '미스터 롯데'.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롯데 선수 출신으로 롯데 감독에 오른 첫 인물. 그 전임 감독들은 모두 프로야구 출범 이전 세대였다. || [[파일:attachment/1979kimyonghee024.png|width=100%]] || |||| {{{#ff4500 '''1979년, 포항제철 야구단 선수 시절.'''}}} ||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 시절부터 이미 주목받았던 촉망받던 인재였다. 1973년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의 [[청룡기]] 우승을 이끌면서 타격과 타점 부분 1위, 그리고 MVP에 선정될 정도로 이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고려대에 진학한 무렵부터 국가대표로 발탁, 프로에 진출하기 전까지 계속 국가대표로 활약한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주로 3루수였고, 가끔 유격수를 봤다. 키가 190cm로 당시로서도, 그리고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큰 키였지만 괜찮은 수비력과 타격 실력을 자랑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포스틸 야구단|포항제철 야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해서 주전 4번타자 자리를 꿰찼었고, 이후 1982년 [[롯데 자이언츠]]가 데려갈때까지 포항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KBO 리그|한국프로야구]]의 원형이 된 [[야구대제전]][* 실업과 대학을 망라해 모든 선수들이 모교의 유니폼을 입고 벌이는 대회. 프로야구의 원형 격이고, 이 대회를 주도한 이용일, 이호헌은 뒷날 KBO의 초대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된다.] 에서 모교인 경남고 소속으로 나와 후배 [[최동원]]과 함께 팀을 이끌면서 우승을 안기고, 그 자신은 최다안타상과 타격상, 대회 MVP에 오른다. 그리고 1980년 세계야구선수권에서 주전 3루수로 출전하기 시작, 그 대회에서 일본 전 '''역전 적시타'''를 쳐내면서 [[대한민국]]의 준우승에 큰 기여를 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대회 베스트 9에 선정된다.[* 참고로 그에게 밀려서 대회 베스트 9에서 빠지게 된 [[일본]]의 3루수가 [[하라 타츠노리]]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