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현(1953) (문단 편집) === [[정연관 상병 구타 사망사건]] === 1987년, 정연관 상병이 부대 내에서 사망했다. 군 내부에서는 사인을 훈련 중 급사로 밝혔다. 수상한 점은 많지만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가족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용현이 가족들의 집을 방문했다. 서슬 퍼런 보안부대의 감시를 피해 담을 넘으며 집을 방문한 그는 아들이 훈련 중 급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로 군 내 부정투표로 인해 발생한 구타가 사인이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처음으로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게 된 선거였다. 군 내에서도 부재자 투표를 진행했는데, 문제는 대놓고 여당을 찍으라고 압박을 주거나 비밀투표를 보장하지 않고 [[북한|이 나라]]처럼 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도장을 찍는 등 윗선에서 대놓고 여당을 밀어줄 것을 강요하고 있었는데 정연관 상병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야당에 투표를 해버렸다. 이에 중대장이 선임들을 불러 야당 표가 나왔다고 꾸짖었고, 선임들이 군기훈련을 준다고 정연관 상병을 구타해 결국 사망에 이른 것. 김용현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구타를 한 선임들의 증언을 녹취하면서까지 증거자료를 모았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 13대 국회의원이였던 [[이철용(정치인)|이철용]], [[최규하]] 전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노무현]] 변호사와 접촉을 진행하면서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쉽지 않았다. 이 부정투표를 인정하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이 무효화가 될 수 있기에 여당에서 필사적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소속의 [[이상득]] 의원[* [[이명박]]의 친형이다.]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도 아니였고, 당신이랑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 않느냐?''''며 논점을 흐리며 방해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김용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고 했고 17년이 흐른 [[2004년]] 7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정연관 상병이 야당에 투표했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해 사망한 것이 마침내 인정되었다. 이 때 김용현이 수집한 자료들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용현. 그러나 그는 정연관 상병의 어머니를 찾아가 한 번 포옹을 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려 유족들은 그렇게 고생했는데 우리가 아무 보상도 해준 게 없으니 섭섭해서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오해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