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현(1953) (문단 편집) === 2019년, 세상에 널리 알려지다 === [youtube(U-KGobmvCvk)] SBS 스페셜에서 그를 찾은 건 다른 곳이 아니라 어느 요양원이었다. 또한 예전의 활동적이고 밝은 모습은 어디가고 휠체어에 앉아 몸을 가누지 못 하는 모습이였다. 사실 과거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그의 몸상태는 말이 아니였는데 비교적 멀쩡하던 시절에도 다리와 허리가 좋지 않아 발바닥을 지압해 고통을 줄이려고 맨발로 걸어다녔고, 잠을 잘 때는 솔잎을 방에다 깔고 잠을 청할 정도였다. 이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혈압이 높았는데, 갑작스럽게 [[뇌출혈]]이 터져 쓰러졌다. 안타깝게도 사람의 손길이 뻗지 않는 오지에서 살고 있었기에 뇌출혈을 일으킨 후 한참 지난 뒤에야 지나가던 등산인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후송되었다. 갑자기 쓰러져 실려가는 바람에 이웃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것. 그나마 등산객에게 발견되어 더 늦기 전에 치료를 받았으니 살 수 있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어서 왼손을 제외하고 온 몸이 마비가 되었으며 [[언어장애]]로 인해 의사소통도 20%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몸의 상태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의사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남은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고,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오른쪽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재활 치료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복지사가 손톱을 깎아주려고 해도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손을 심하게 떨어 결국 손톱도 깎지 못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일:김씨돌_상봉.jpg|width=80%]] [[파일:김씨돌3.png]] 또한 정연관 상병의 유족들과의 상봉도 이루어졌다. 김용현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반대했지만, 유족들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져 15년 동안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PD가 만남을 주선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뒤 다시 나타나지 않았기에 유족들은 그가 정연관 상병을 잊은 것인지,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못한 것이 서운해서 떠난 것인지 오해하기도 했지만 이 날 상봉으로 '''그런 오해는 싹 사라졌다.''' 김용현은 불편한 몸으로 유족들을 만나자 '''대성통곡'''을 했고, 그를 침착하게 만나려고 한 유족들도 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 하고 쏟아내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후에 유족들과 김용현과 함께 정연관 상병의 영정을 들고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나마 밝은 표정의 김용현과는 대비되게 유족들의 표정은 매우 어두운 것을 넘어 거의 울기 직전인 걸 볼 수 있다. 17년 동안 친족도 아니면서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고 고군분투 했는데, 어렵게 15년 만에 만나 감사를 표하려고 했는데 현재 그가 건강하지 못하게 지내고 있는 걸 보면 유족들의 표정도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족들도 상당히 놀란 듯하다. 그를 보자마자 (몸 상태가) 왜 이러느냐는 말을 반복했고, 정연관 상병의 친형도 김용현을 상봉했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고 밖에서 '''"나도 만나고 싶었는데 저 모습일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이야... 왜 저래 도대체가..."'''라며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몇 년 전 방송에 나온 그를 우연히 보고 반가웠었다고 하는데(방송사에 연락해보고 싶었지만 다시 연락하는 것이 부담을 줄까봐 마음을 접었다고), 얼마나 지났다고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있으니 더욱 안타까워했다. 방송사 제작진들은,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유족들(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데 집에서 가깝지도 않은, 잘한다고 유명한 미용실에 물어물어 다녀와 특별히 파마를 할 정도였다. 만나기 직전에는 하느님께 기도를 할 정도였고.) 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 김용현의 상태를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파일:김씨돌 주먹.png]] 이렇다 할 소득도 없어 [[기초수급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재활 치료를 받을 여건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신부와 수녀들의 도움으로 치료는 받고 있지만 그 이상의 재활 치료는 아직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대학교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서울권 명문 사립대에 재학하고 있던 엘리트였기에 만약 이런 길을 걷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어렵게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후회하거나 자신의 현재 삶을 개탄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는데,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왔느냐는 PD의 질문에 한 말이.... >노트 위에 거침없이 적어 내려간 말은 '''당시 인터뷰 현장에 있던 전 스텝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머리를 한 대 맞기라도 한 듯,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 >'''[ruby(人間, ruby=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모른 척 지나쳤던가. 얼마나 까맣게 잊은 채 살고 있었던가.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요한, 씨돌, 용현> 단행본 227쪽.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션을 맡은 [[류수영]]도 녹음 중 이 부분에서 멍해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는 NG를 냈다고 한다. 또한, 인터뷰를 끝내고 멀어지는 카메라를 향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왼손으로 힘겹지만 힘차게 주먹을 들어올리며 '''진정한 [[의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2019년 9월, SBS [[세상에 이런일이]]의 유튜브 채널 '우와한 비디오'에서 김용현의 근황을 다뤘다. [[https://youtu.be/e98C-roU6Pk|#]]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후원이 이어졌으며, 이전에는 요양원에서 단순 요양만 받는 수준이었다면 이후에는 재활 전문 치료병원에서 재활을 받고 있다고 알렸다. 연하장애[* 음식을 삼키는 기능에 문제가 생긴 상태]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 해 질질 흘리는 심각한 상태였으며, 연하치료와 더불어 노래치료를 통해 아직은 부족하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등, 재활 효과가 좋다고 한다. SBS 스페셜 촬영 당시에는 말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2019년 12월에 [[SBS 스페셜]]에서 김용현에 대해 다시 다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