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현(1953) (문단 편집)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1995년]] [[6월 29일]], 대한민국의 비극 중 하나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강원도의 자연인 김씨돌로 살던 그는 서울로 향해 다시 김요한이란 이름으로 구조 활동을 했다. 붕괴 사고 민간구조단[*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장비나 기술을 갖고 있으며 아무런 대가도 받지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온 이들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세월호 참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잠수사들 역시 아무 대가도 약속받지 않고 몸이 망가질 정도로 헌신했다. ~~이런 분들에게 1구당 500만원을 받는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사망사고 책임을 묻다니 정말 나쁜놈들이야~~ 씨돌 본인도 세월호 때도 마음같아서는 팽목항에 가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 하지만 그때는 나이도 많고 건강이 좋지 않아 가지 못했다고 한다.]장인 고진광 씨도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삼풍백화점에 도착한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사건 발생 다음 날([[6월 30일]])에 도착해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강원도에서 오느라 늦었고, 아직 구조할 사람이 더 필요할까 해서 왔다'고 답변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김용현은 붕괴 현장에서 많이 울면서도 사람을 열성적으로 구조하려고 애썼고, 임산부 사망자의 시신이 무너진 구조물에 깔려서 한쪽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수습하기 힘들 상황이 되자 결사 반대하고는 혼자서 쉬지 않고 고인의 다리를 짓누르는 구조물을 해체하기를 만 하루, 마침내 온전한 모습으로 시신을 수습하는 데 성공해냈다. 4일째 날에는 그때까지 살아있던 22세의 여성 이모 씨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구조 영상에서도 '''"산소호흡기! 산소호흡기 가져와!"'''라는 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출한 이모 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후 사망했다. 김용현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언론사에 칼럼을 보내고 서울특별시 소방본부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고 대책을 요구했고, 소방본부장은 7월 10일 김용현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회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사고가 수습이 되고, 기자들이 영웅인 민간구조대원들을 인터뷰하려고 했는데 이때 김용현만은 취재를 거절했고, '''"전 괜찮아요."'''라는 말과 함께 또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